법원 “패터슨이 찔러”… 피 묻은 옷 증거 인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30일 03시 00분


‘이태원 살인’ 패터슨 징역 20년

“범인을 잡아줘서 마음이 후련하다. 중필이도 이제 마음 편히 가질 거 같아.”

‘이태원 살인사건’ 피해자 고 조중필 씨(당시 22세)의 어머니 이복수 씨(74)는 29일 서울중앙지법을 나서며 의외로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이날만을 애타게 기다려온 세월이 19년이다. 1997년 4월 3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햄버거 가게 1층 화장실에서 조 씨를 살해한 진범으로 기소된 미국인 아서 패터슨(37)은 이날 1심에서 징역 20년에 처해졌다. ‘죽은 사람’은 있지만 ‘죽인 사람’이 없어 미궁에 빠졌던 이태원 살인사건이 사건 발생 6875일 만에 진상이 규명됐다.

○ 피 묻은 옷이 결정적 증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심규홍)는 29일 패터슨이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이라며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패터슨을 무기징역에 처해야 한다고 판단했지만, 살인을 저질렀더라도 소년범에게는 최대 징역 20년까지 선고하도록 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법’에 따라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패터슨은 당시 만 17세였다.

이 사건의 구조는 간단하다. 당시 조 씨를 뒤따라 화장실에 들어간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37) 중 한 명이 명백히 범인이다. 하지만 둘은 직접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상대방이 범인이라고 주장해왔다. 재판부는 “패터슨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던 조 씨의 뒤로 다가가 목 오른쪽, 가슴, 목 왼쪽을 9차례에 걸쳐 잇따라 찌른 다음 칼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고 주장한 리의 진술을 사실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사건 당시 패터슨이 양손과 머리, 상·하의와 양말에 피가 잔뜩 묻어있었던 반면 리는 상의에 적은 양의 피가 스프레이로 뿌린 듯 묻어있던 점을 결정적 증거로 판단했다. 조 씨는 칼날 길이 9.5cm짜리 칼에 오른쪽 목을 세 번, 가슴을 두 번, 왼쪽 목을 네 번 찔렸다. 패터슨과 리는 “범인이 조 씨를 처음 찔렀을 때 오른쪽 목에선 피가 분수처럼 솟았고, 치명상이 된 왼쪽 목 상처에선 울컥울컥 쏟아졌다”고 공통적으로 진술했다.

재판부는 9.5cm라는 짧은 칼날로 좁은 부위를 여러 번 집중해 찌르려면 범인이 조 씨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야 했고, 그랬다면 옷 전체에, 최소한 칼을 쥔 오른손만큼은 반드시 많은 피가 묻을 수밖에 없으므로 패터슨이 진범이라고 판단했다. 패터슨이 범행 직후 1층 화장실에서 4층 술집으로 올라와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양손과 머리에 묻은 피를 닦았다는 현장 목격자들의 진술도 유죄의 근거가 됐다.

○유죄 판결 나오자 안절부절못해


이날 패터슨은 옥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재판부를 향해 허리 숙여 한국식으로 인사했다. 피고인석에 앉은 직후 긴장된 표정으로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 150석 가득 들어찬 방청객을 둘러봤다. 정수리 머리숱이 많이 빠져서인지 앞머리와 옆머리에 헤어 제품을 발라 모두 뒤로 넘겨 여백을 가렸고, 말끔히 면도한 상태였다. 선고가 시작되자 허리를 꼿꼿이 펴고 오른쪽으로 의자를 45도 돌려 몸을 재판부로 향했다. 이후 재판부와 통역이 말을 할 때마다 고개를 돌리며 쳐다봤다.

패터슨은 재판부가 리의 진술을 인정하고 자신의 진술을 배척한다는 취지의 말을 통역에게 전달받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한다는 재판부의 말을 전해 듣고는 몸을 앞뒤로 수차례 젖히며 안절부절못했다. 재판부가 “피고인은 생면부지인 피해자를 잭나이프로 공격해 별다른 이유 없이 살해했다”고 언급하자 또다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패터슨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은 직후 7명에게 둘러싸여 다시 감옥으로 돌아갔다

재판부는 1997년 살인 혐의로 기소됐다가 무죄 판결이 확정된 리 역시 공범이라고 판단했다. 리가 화장실에 따라 들어간 건 단순히 범행을 구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못 들어오게 감시하거나 범행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리는 한 사건의 재판이 확정되면 두 번 재판할 수 없다는 ‘일사부재리’ 원칙에 따라 처벌을 받지는 않는다. 조 씨 어머니 이 씨는 “1997년 당시 검찰이 패터슨과 리를 공동정범으로 기소했어야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패터슨이 19년 만에 법의 심판을 받게 된 데엔 2009년 9월 개봉한 영화 ‘이태원 살인사건’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이 영화는 대중의 무관심에 묻혀있던 이태원 살인사건의 진범을 잡아야 한다는 여론을 불러일으켜 패터슨을 국내로 송환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를 만든 홍기선 감독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영화를 찍을 때만 해도 진범을 한국에 데려와 심판할 수 있을 거라곤 기대하지 못했다”며 “패터슨과 리 모두 죄가 있고 책임이 있으니 진실한 사과부터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동주 djc@donga.com·신나리 기자
#패터슨#이태원살인사건#조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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