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비정규직법 개정 논의 유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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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 자기 입장만 고집… 한발짝도 못 나가는 9·15합의
사용기간 연장 등 핵심 쟁점
면밀하게 장단점 분석해 현실적 대안 찾는게 국회 할 일
명분과 이념 울타리에 갇혀, 노사 대리전 공방이나 할 땐가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지난 ‘9·15 노사정 합의’에서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하여 기간제와 파견근로자의 고용 안정 및 규제 합리화에 대해 합의했지만 상당수의 쟁점이 ‘추가 논의 과제’로 미뤄졌고, 핵심 쟁점에 대해서는 노사정 간에 이견이 너무 커서 정기국회까지 합의가 순조롭지 않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과연 노사정 합의가 있었기나 한 것인지 의심이 든다. 다시 9·15 노사정 합의 정신에 따라 이 논점을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가장 논란이 큰 쟁점은 기간제 근로의 사용 기간 연장, 파견근로 대상 업무 및 허용 범위에 관한 규제 완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머지 쟁점에 대해서도 노사정 간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논쟁이 이뤄지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앞의 쟁점에 비해 전투력은 떨어진다. 고용 불안을 야기하는 초단기 쪼개기 계약 방지, 생명·안전 분야 비정규직 사용 제한, 차별 시정 절차에 노동조합 참여, 단기계약에도 퇴직급여 지급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사용 기간 연장과 파견근로 규제 완화의 경우는 고용의 유연성을 좀 더 높이자는 것이고 나머지 쟁점들은 고용 안정성을 강화하는 것이어서 앞의 쟁점들에 대해서는 노동계가, 뒤의 쟁점들에는 경영계가 격하게 반대하고 있는 양상이다.

우리 고용 상황을 보면 전체 근로자 중에서 기간제 근로자의 비중은 여전히 높고 2년 이후 무기계약직(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근로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기간제 근로자 10명 중에 2명 정도만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뿐 10명 중 6명 이상은 1, 2년마다 회사를 전전한다. 특히 나이 든 근로자일수록 무기계약직 전환 비율은 더욱 줄어든다. 기업으로서는 기간제 근로자를 2년마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면 수요 변동에 따른 탄력적인 고용 조정이 어렵고 인건비의 인상을 초래하게 돼 부담이 커진다는 이유로 무기계약 전환을 꺼린다.

이번 비정규직법 개정의 핵심 쟁점은 이와 같이 고용 불안정에 노출되어 불안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근로자들에게 어떤 비전과 희망을 줄 것인지 그 대안을 찾는 것이다. 그 대안은 노동계와 야당이 주장하는 것처럼 처음부터 결원 대체나 계절적 일자리 등에만 기간제 근로자를 사용하는 것일 수도 있고(사용 사유 제한), 정부와 여당이 제안한 것처럼 현재 2년으로 제한되어 있는 사용 기간을 연장해서 한 직장에 좀 더 오래 다닐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현행법이 정한 2년이라는 획일적인 사용 기간은 근로자의 고용 안정은 물론이고 기업의 효율적인 인력 운영에도 실효성이 없는 입법임이 확인되었다는 점이다. 논의의 출발점은 바로 여기다. 야당의 주장대로 사용 사유를 제한하면 일자리와 고용 기회의 감소 등 노동시장에 어떤 부작용을 초래하게 될지, 여당의 제안처럼 사용 기간을 연장하면 무기계약 전환이 지연되어 기간제가 늘어나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장단점을 분석하고 우리 노동시장의 현실에 좀 더 부합하면서,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내는 것이 입법부의 과제이다.

파견의 경우도 그렇다. 대상 업무의 한정은 불안정 고용의 확산을 방지하는 데 기여하는 측면이 있지만 반대로 사내도급의 확산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모두 알고 있는 문제이다. 나아가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고령자와 한시적 수요가 있는 전문직 종사자에 대해 파견근로를 규제할 필요가 있을까? 인력난이 심하고 경기변동이 커 상시 고용 구조가 정착되기 어려운 주조, 금형과 같은 기초공정업종(이른바 뿌리산업)에 파견근로가 고용 숨통을 열어주는 방안이 될 수 없을까? 노동계가 우려하듯이 파견근로의 허용이 기존의 정규직 일자리를 파견근로로 바꾸는 등 남용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면 기존 일자리의 보호와 파견이 가능한 일자리를 사업장별로 노사가 합의하여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뿌리산업에 파견이 도입되면 질 낮은 일자리만 양산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노사정특위의 전문가그룹은 상용형 파견을 대안으로 제시한 바 있다. 파견근로의 장점과 단점을 명확히 하고 장점을 살리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고민해 가는 것이 국회가 보여줘야 할 태도이다.

노사가 기존 입장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판에 국민 전체를 대표하는 국회마저 서로 명분과 이념적 울타리에 갇혀 넘을 수 없는 금을 그어 놓은 채 노동계와 경영계의 대리전 공방만 벌인다면 결국 안정된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다수 근로자들의 고통의 시간만 길어질 뿐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비정규직법#개정#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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