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ide GyengBuk]“올곧은 정신으로 신바람나게 어울리며 미래 열어가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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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정체성①]경북의 정체성을 찾다

현 경북도청(대구 북구 연암로) 2층 계단 벽에 걸려 있는 독도 그림. 1층 현관에는 독도 모습을 24시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영상장치가 있다. 경북은 독도와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마음을 상징한다.
현 경북도청(대구 북구 연암로) 2층 계단 벽에 걸려 있는 독도 그림. 1층 현관에는 독도 모습을 24시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영상장치가 있다. 경북은 독도와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마음을 상징한다.

전문가 65명 3년 동안 토론하며 ‘경북 정체성 4대 정신’ 확정

정의: 올곧음

신라의 화랑, 자신을 연마하며 민족 과업인 삼국통일 성취에 힘써

공동체에 대한 사명감 엿볼 수 있어

신명: 신바람

풍류와 풍월을 아는 화랑의 정서 ‘찬기파랑가’ ‘도산십이곡’ 등

어려울 때 흥 돋우며 스스로 단련
지난해 11월 발간한 ‘경북의 혼, 한국정신의 창’책 표지.
지난해 11월 발간한 ‘경북의 혼, 한국정신의 창’책 표지.

‘정체성(正體性)’은 어렵게 느껴진다. 사전의 풀이도 잘 와 닿지 않는다. 글자 그대로 ‘바른(正) 모습(體)’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정체성은 역사나 전통에 나타난 바른 모습을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바른 모습을 추구하는 성질이다. 정체성에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품는 일관성이다.

경북도는 2011년 10월 ‘경북다움’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 경북정체성포럼(위원장 심우영)을 만들었다. 경북도청이 오랜 대구 시대를 마감하고 경북 안동으로 이전(2016년 2월)하는 큰 전환점에서 새로운 발전을 꾀하기 위해서는 정체성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실천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포럼에는 △화랑 △선비 △호국 △새마을 등 4개 분과에 전문가 65명이 참여했다. 위원들은 3년 동안 많은 토론을 거쳐 시대별로 고대(화랑정신) 중세(선비정신) 근대(호국정신) 현대(새마을정신)를 관통하는 낱말 140개를 도출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의(올곧음) △신명(신바람) △화의(어울림) △창신(나아감)이라는 ‘경북정체성 4대 정신’을 확정했다. 보편성을 갖는 가치를 중시했다.

포럼은 4대 정신이 시대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미래를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자세히 살펴 지난해 11월 ‘경북의 혼(魂), 한국정신의 창(窓)’이라는 제목의 책(442쪽)을 펴냈다. 정의 신명 화의 창신에서 한 글자씩 따 ‘정신의 창’으로 했다. 풀이하면 ‘올곧은 마음으로, 신바람 나게, 함께 어울려, 앞장서 열어가자’는 뜻이다. 경북에 한정되지 않고 나라의 정체성으로 연결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한국정신의 창’으로 표현한다.

올곧음(정의)-큰 뜻을 세우다

올곧음은 정의로움이다.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에 매달리지 않고 공동체를 지키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자세이다. 신라의 주역이던 화랑은 올곧은 태도로 자신을 연마하면서 삼국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업을 성취하는 데 앞장섰다. 김유신 사다함 관창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화랑은 통일 후에도 신라의 기둥이었으며 신라정신을 형성했다. 화랑은 전국을 다니면서 호연지기를 키우고 국가 공동체에 대한 높은 사명감을 쌓았다.

윤리를 중시하는 화랑의 모습은 ‘임신서기석’에서 엿볼 수 있다. 이들은 유교뿐 아니라 불교와 도교의 기풍을 살리면서 심신을 단련하고 나라가 어려움에 놓이면 용맹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원광법사가 세속오계(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생유택)를 화랑에게 가르치고 최치원은 유불선(儒佛仙) 3교가 화랑에게 들어 있다고 했다. 19세기 경주에서 수운 최제우가 백성의 삶을 위해 동학(東學)을 일으킨 배경에도 화랑에서 비롯된 신라인의 공동체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유교의 나라 조선은 경북이 이끌었다. 경북 영주 출신의 안향이 고려 후기에 중국의 주자학을 처음 들여온 후 목은 이색과 포은 정몽주, 도은 이숭인, 야은 길재, 삼봉 정도전 등 경북인들은 학문적으로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목은 포은 도은 야은은 고려왕조의 절개를 지킨 ‘사은(四隱)’으로 지금까지도 그 정신이 면면히 이어온다. 삼봉은 조선왕조 개국을 주도하고 기틀을 마련했다.

조선 유학자의 상징인 퇴계 이황은 ‘공경’의 공부를 통해 공동체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가 평생 강조하고 실천한 ‘경(敬)’은 선비정신의 핵심이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어린 임금이 나라를 잘 다스리길 바라는 간절한 뜻에서 ‘성학십도’를 지어 올렸다. 제자인 서애 류성룡이 임진왜란을 몸을 던져 막아내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징비록’을 지어 경계한 자세 또한 경의 실천이다. 퇴계의 제자 중에는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활약한 경우가 많다.

1894년 경북 안동에서 일어난 의병(갑오의병)은 전국 첫 항일독립운동이다. 청일전쟁과 을미사변 등으로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선공후사의 정신을 발휘했다. 을사늑약과 군대해산을 전후해서 다시 의병이 일어났는데 김흥락 이만도 이강년 허위 등이 앞장섰다. 영덕에서는 평민 출신 신돌석이 활약했다.

을사늑약(1905년 11월 17일) 후 일제에 항거한 자결 순국도 전국 90명 중 경북이 19명으로 가장 많다. 퇴계의 후손인 향산 이만도는 의병장으로 활동하다 나라를 잃은 국치 소식을 듣고 단식 끝에 목숨을 잃었다. 백하 김대락, 석주 이상룡, 동산 류인식, 일송 김동삼 등은 만주 등지로 옮겨 독립운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린 남자현은 남편이 의병 활동 도중 숨지자 3·1운동에 참가한 후 망명해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붓을 통한 항일투쟁도 뺄 수 없다. 류인식은 1917년 ‘대동사(大東史)’를 저술했다. 단군부터 1910년 경술국치까지 역사를 민족주의 관점에서 서술한 역사서이다. ‘광야’와 ‘청포도’의 시인 이육사도 잊을 수 없다. 그는 퇴계의 후손이다. 독립유공자는 경북이 2100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다.

6·25전쟁이 발발해 나라의 위태로움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올곧음은 오로지 나라를 지켜내는 것이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에서 온몸을 던져 지켜낸 것은 전쟁 상황에서 발휘한 정의롭고 올곧은 자세였다. 전쟁 후 폐허와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잘살기 운동을 펼친 것은 새마을운동으로 확산됐다. 올곧은 자세로 공동체를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전통과 뿌리에서 돋아난 실천이다.



신바람(신명)-흥과 멋을 알다

신바람이 나지 않으면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신바람이 나면 이겨내려는 의지가 생기고 이를 실천할 수 있다. 이런 신바람은 자연과 일상을 즐기며 삶을 긍정적으로 느끼는 바탕이 있을 때 현실적 힘이 될 수 있다.

화랑의 풍류(風流)는 역동성과 흥, 신바람의 상징이다. 화랑의 풍류와 풍월(風月)은 바람과 물, 달처럼 자연에 몰입하는 정서이다. 화랑들이 산천 곳곳을 찾아다니며 즐긴 것은 신바람을 일으키기 위한 심신 단련을 위해서였다. 세상과 자연의 이치가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화랑의 스승이던 충담사가 지은 향가 ‘찬기파랑가’는 화랑인 기파랑의 인격과 충성심을 자연물에 비유한다.

선비의 신바람은 움직임과 머무름으로 나타난다. 현실 정치에 참여해서는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물러나면 좌절 대신 자연을 즐기며 삶을 가꾸는 모습이다. 퇴계의 스승인 회재 이언적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고향인 자옥산 자락에 독락당을 짓고 공부에 열중했다. 신바람의 또 다른 모습이다. 회재가 태어나고 자란 양동마을은 세계문화유산이다. 퇴계의 고향 선배인 농암 이현보는 관직에서 물러난 뒤 자연을 즐기면서 ‘어부가’를 남겼다. 소년 시절부터 시를 즐겨 쓴 퇴계는 ‘도산십이곡’ 등 수많은 시를 남겼다.

국난의 시기에 나타나는 또 다른 모습으로 신바람이 등장한다. 의병과 독립운동에 앞장선다. 나라를 구한 다음에는 새마을운동처럼 가난을 이겨내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졌다. 경북 청도와 포항에서 비롯된 새마을운동의 선도적 사례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영일만의 기적으로 불리는 포항제철소 건립도 새마을정신이 바탕이 됐다.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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