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조선왕조실록 포쇄’ 재현행사 보러 오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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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서 열려… 행사 전과정 관광객에 자세히 설명
지역대표 문화 콘텐츠로 성장 기대

실록을 바람에 말리는 포쇄행사는 엄격한 절차와 법도에 따라 진행된다. 2013년 열린 포쇄 재현 행사에서 포쇄사관들이 궤에서 꺼낸 책을 바람으로 말리고 있다. 전주시 제공
실록을 바람에 말리는 포쇄행사는 엄격한 절차와 법도에 따라 진행된다. 2013년 열린 포쇄 재현 행사에서 포쇄사관들이 궤에서 꺼낸 책을 바람으로 말리고 있다. 전주시 제공
조선왕조실록은 양이 방대할 뿐만 아니라 정치 외교 군사 경제 사회 풍속 과학 예술 학문 사상 등 각 방면의 역사적 사실을 망라하고 있어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귀중한 기록물이다. 1893권 888책의 조선왕조실록은 1997년 유네스코의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당대 정치의 잘잘못과 왕과 신하들의 선악·간위(奸僞) 등을 사실대로 기록한 것이므로 국왕이나 대신들도 사사로이 열람할 수 없었으며, 오직 국정 운영의 참고자료로만 활용됐다.

실록 편찬은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왕이 승하하고 다음 왕이 즉위한 후, 즉 왕의 사후에 이뤄졌다. 오랫동안 심산유곡의 격리된 사고(史庫)에 비장되었고, 일반인들은 접근할 수도 없었다. 실록을 고증할 필요가 있을 때는 특별히 사관을 사고에 파견하여 현안과 관련된 부분만을 등사하여 오도록 했다.

왕조실록은 이처럼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한지로 제작됐기 때문에 습기와 벌레에 취약했다. 이 때문에 정기적으로 꺼내 바람에 말리고 볕을 쬐는 일이 필수적이었다.

실록을 바람에 말리는 ‘조선왕조실록 포쇄(曝쇄)’ 재현 행사가 17일 전주 한옥마을 경기전에 있는 전주사고에서 열린다. 조선시대 전국 4곳의 사고에 보관하던 실록 가운데 전주사고의 실록만 유일하게 임진왜란의 병화를 피했다. 전주의 선비 안의와 손홍록이 1592년 임진왜란이 나자 사재를 털어 실록을 정읍 내장산에 옮겨 1년간 안전하게 보존한 덕분이다.

포쇄는 왕조실록을 다루는 일인 만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의 지휘에 따라 엄격한 절차대로 진행한다. 이번 행사는 1871년 박정향이 포쇄관으로 임용돼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박학사포쇄일기’에 따라 재현되는 것으로 2013년에 이어 두 번째다. 조선시대에 포쇄는 2, 3년에 한 번씩 봄가을 청명한 길일을 택해 이뤄졌다.

포쇄 재현 행사는 포쇄사관 행렬, 영접례·기념식, 포쇄 재현 등 세 부분으로 진행된다. 포쇄사관 행렬은 임금의 명을 받고 포쇄사관으로 임명받은 관리들의 행렬을 재현한 것이다. 포쇄사관 행렬이 사고에 도착하면 전주부윤이 맞이하는 영접례가 행해진다. 메인 행사인 포쇄는 전주사고 앞에서 4배한 후 사관 일행이 사고 안에 들어가 실록궤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고 궤를 꺼내는 일로 시작된다.

책을 꺼내 바람을 쐬고 나면 먼지를 털고 책과 책 사이에 새 종이를 2장씩 넣어 기름종이로 싼 다음 다시 붉은색 보자기로 싸서 궤 속에 넣고 봉안한다. 이때 부패를 막기 위해 천궁(미나릿과 식물)과 창포를 함께 넘는다. 궤의 자물쇠를 채우고 사관이 수결(手決)한 종이로 밀봉한 후 사고에 다시 넣는다. 마지막으로 포쇄 결과보고서인 형지안(形止案)을 작성한 후 사고 앞에서 4배를 올리면 행사가 끝난다. 포쇄 과정에서도 실록의 내용이 공개되거나 누설되는 일이 없도록 엄격하게 관리했다.

전주시는 시민과 관광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행사 전 과정에 전문가의 설명을 곁들일 예정이다.

김병수 전주시 전통문화과장은 “전주는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도시이자 감영목판이나 한글고전소설 등 완판본 책을 많이 찍어낸 출판의 도시였다”며 “왕조실록 포쇄행사를 전주의 주요 문화 콘텐츠로 키워 나가겠다”고 말했다. 전주시는 포쇄행사에 이어 24일에는 어진(왕의 초상화)을 새로 그려 경기전에 봉안하는 행렬을 재현하는 행사를 열 예정이다.

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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