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모뉴엘’ 거짓 수출신용장으로 1500억 대출…은행들 수백억 손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1일 16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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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당 원가 2만 원짜리 TV캐비닛을 2억 원에 판다고 허위로 수출 신용장을 꾸민 뒤 은행에서 1500억 원대 무역금융을 대출받은 중소기업 대표가 세관당국에 적발됐다. 지난해 금융권에 엄청난 피해를 안긴 중견 가전업체 ‘모뉴엘’과 비슷한 사기수법을 사용했다. 제대로 심사하지 않은 채 서류만 믿고 대출을 해준 은행들은 수백억 원대 손실을 입게 됐다.

관세청 서울본부세관은 2010년 7월부터 최근까지 거짓 수출 신용장으로 1522억 원을 부당하게 대출받은 금형제작업체 H사 대표 조모 씨(56)를 관세법 및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 조 씨의 범죄를 도운 H사 자금담당과장 유모 씨(34)는 불구속입건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조씨는 2010년 7월부터 최근까지 291회에 걸쳐 원가가 2만 원도 안 되는 플라스틱 TV캐비닛을 본인 자녀 명의의 일본 페이퍼컴퍼니에 개당 2억 원에 판매했다고 부풀려 총 1563억 원을 세관에 수출신고했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1522억 원어치의 수출채권을 기업은행, SC제일은행 등 5개 시중은행에 매각했다. 조 씨는 만기 200일짜리 수출채권의 상환일이 도래하면 다시 위장 수출 방식으로 확보한 수출채권을 팔아 기존 대출금을 갚는 ‘돌려막기’ 수법을 썼다. 그는 지금까지 1522억 원 중 286억 원을 갚지 않는데 회사 운영자금으로 신용대출을 받은 61억 원을 더하면 미상환 금액이 347억 원에 이른다. 기업은행은 이중 300억 원 가량의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된다. H사의 실제 연매출은 6억 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대출받은 무역금융 가운데 28억 원을 수입대금 명목으로 일본의 페이퍼컴퍼니 계좌에 송금해 미국에서 주택구입 등에 사용했다. 또 월세 1800만 원에 관리비 월 350만 원짜리 고급 빌라에서 내연녀와 생활했고, 페라리 2대, 람보르기니 1대 등 외제차 10여 대를 리스해 타고 다녔다. 그는 법인카드로 60여억 원 상당의 금괴와 명품을 사들이고, 내연녀 명의의 회사에 25억 원을 송금하기도 했다.

세종=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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