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돈’ 국고보조금 470억 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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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교체” 가짜사진 내고 6억… “직원채용” 서류 꾸며 4억
3大비리 단속 두달만에 2423명 검거… ‘보조금 횡령’ 41%로 가장 많아

경기 시흥에서 부천으로 넘어가는 ‘하우고개’의 식당가 주인들은 2013년부터 ‘특별한’ 용돈벌이를 시작했다. 수도권의 다른 유원지처럼 식당과 카페 등이 어지럽게 개발된 하우고개가 국토교통부의 환경문화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것이 계기였다.

국비 보조사업의 대리집행 기관인 시흥시는 “보조금을 줄 테니 상인회를 조직해 간판을 바꿔라”라고 주문했다. 간판을 바꾼 업소에 교체 비용의 70%를 보조금으로 지급했다. 국고보조금 지급 소식이 퍼지자 순식간에 ‘눈먼 돈 챙기기’ 경쟁이 시작됐다. 예전 간판은 그대로 둔 채 가짜 간판 사진을 찍어 서류에 첨부해 보조금을 빼먹는 상인이 나타났다. 간판 교체는 업소당 하나만 허용됐지만 상인회 간부들은 정문과 후문의 간판 두 개를 교체했다며 보조금을 두 번 받아갔다. 시공업자와 짜고 간판 교체 비용을 부풀려 신고하는 수법으로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교체 비용까지 국고에서 받아간 사람도 생겼다.

하우고개의 ‘공짜’ 간판 바꾸기는 지난해 6월 끝났다. 경기 시흥경찰서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국고보조금 6억5000만 원을 횡령한 혐의로 하우고개 상인회 김모 씨(42) 등 상인 3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상인들이 제출한 서류와 실제 현장을 비교하지 않고 보조금을 지급한 시흥시 공무원 2명도 함께 입건됐다. 시흥경찰서 관계자는 “국고보조금을 누가 더 받을 것인지 상인들 사이에 알력 다툼이 벌어지면서 소문이 퍼져 수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결과 이처럼 국고보조금을 빼먹는 ‘하우고개’는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었다. 경찰이 4, 5월 두 달 동안 부패 비리를 집중 단속한 결과 국고보조금 횡령 적발액이 약 470억 원이나 됐다. 전북 익산에서도 고용노동부의 위탁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사원을 채용한 것처럼 꾸며 국비 4억3400만 원을 챙긴 일당 9명이 검거됐다.

경찰은 집중단속 기간 동안 △토착·권력형 비리(뇌물 수수 등) △고질적 민생비리(국고보조금 횡령 등) △생활밀착형 안전비리(안전규정 위반) 등 3대 분야 비리 수사에 집중해 2423명을 검거했다. 이 중 국고보조금 횡령사범이 988명으로 전체의 40.7%에 달했다. 그만큼 사회 각계에 퍼져 있는 고질적 비리 형태라는 의미다.

경찰 관계자는 “국고보조금은 복지부터 고용, 연구개발, 문화 부문까지 정부의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집행된다”며 “그만큼 비리가 자주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에 적발된 국고보조금 횡령액을 환수하도록 각 기관에 통보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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