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경제는 남는 장사… 정치는 밑진 장사… 해외 순방의 역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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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해외순방

박근혜 대통령에게 해외 순방은 역설적이다. 순방에 나서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세일즈 외교’ 실적이 상세히 소개돼 귀국 뒤 지지율이 오르는 ‘순방 효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순방 때마다 큰 사건이 터지면서 순방 효과를 잠식한다. 이른바 ‘순방 리스크’다.

순방 리스크 얘기가 나올 때마다 청와대는 울상이다. 박 대통령을 비롯해 대통령외교안보수석실, 경제수석실 등이 전력을 다하는 것 중 하나가 순방이다. 짧은 순방 기간에 최대 성과를 내기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도 순방 리스크 한 방에 성과가 빛을 바랠 수 있어서다.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도 생긴다. 그 많은 성과가 지금 제대로 추진되고 있을까. 그저 순방 성과를 일시적으로 과장한 것은 아닐까. 순방 효과나 순방 리스크는 일시적 현상이지만 순방 성과는 장기적으로 국익과 직결되는 문제다. 하지만 순방 이후 그 많은 순방 성과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는 좀처럼 알려져 있지 않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5년 동안 49차례 순방에 나서 약 1200억 원을 썼다. 한 번 출국할 때마다 평균 24억5000만 원을 사용한 셈이다. 박 대통령도 취임 이후 첫 순방인 미국 방문 때 33억3000만 원을 지출했다. 막대한 국가 예산이 들어가는 순방에서 손에 잡히는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대번에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실상 외유 아니냐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중남미 순방까지 취임 이후 모두 15차례 순방에 나섰다. 방문국은 33개국이다. 이들 국가와 맺은 협정이나 양해각서(MOU)는 모두 272건. 국가당 평균 8건이다. 중남미 4개국 순방 때는 모두 78건의 협정이나 MOU를 맺어 취임 이후 최다 기록을 세웠다.

동아일보는 과연 순방 성과가 실제 경제적 이득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점검해 봤다. 중남미 순방 다음으로 많은 43건의 협정과 MOU를 맺은 지난해 6월 중앙아시아 순방 성과를 집중적으로 살펴봤다. 시기적으로 구체적 성과를 확인하기 힘든 중남미와 중동 순방(올해 3월)은 검증 대상에서 제외했다.  
▼ 순방 징크스에 가려졌지만… 39억달러 플랜트사업 순항중 ▼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15차례 해외 순방에 나서 33개국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브라질 상파울루 산업은행에서 대한상공회의소 및 상파울루 산업연맹 주최로 열린 한-브라질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이후 15차례 해외 순방에 나서 33개국을 방문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브라질 상파울루 산업은행에서 대한상공회의소 및 상파울루 산업연맹 주최로 열린 한-브라질 비즈니스포럼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지난해 12월 대한상공회의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 등 경제5단체는 ‘해외 진출 성과 확산 토론회’를 열고 박 대통령 해외 순방의 경제 성과를 점검했다. 순방을 계기로 기업들이 해외에서 수주한 대규모 프로젝트는 502억 달러(약 54조8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투자 유치 실적도 7억5000만 달러(약 8188억 원)에 달했다. 기업들의 해외 수주 실적은 현재 제대로 추진되고 있을까.

순방 경제 성과를 검증하다

지난해 6월 중앙아시아 투르크메니스탄 방문 당시 청와대는 최대 경제 성과의 하나로 천연가스액화(GTL) 플랜트 건설 협력 양해각서(MOU) 체결을 꼽았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수도 아시가바트(구칭 아슈하바트) 인근에 연간 천연가스 35억 m³를 처리해 경유와 나프타를 생산하는 설비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박 대통령의 투르크메니스탄 국빈 방문을 계기로 일본 기업 위주의 GTL 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가 보장됐다는 것이 당시 설명이었다.

이 사업에 참여한 현대엔지니어링과 LG상사는 지난해 12월 사업 타당성 조사 및 EPC(설계·조달·시공) 제안서를 검토한 뒤 발주처인 투르크메니스탄 국영가스공사와 지속적으로 사업을 논의했다. 이어 정부는 투르크메니스탄 진출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3월 양국 정부 간 고위급 인사 면담을 통해 GTL 사업의 원활한 이행을 당부했다. 구르반굴리 베르디무함메도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이 4월 방한했을 때 양국 정상이 지켜보는 가운데 MOU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인 기본합의서를 체결해 사업은 본궤도에 올랐다. 본계약은 7월경 맺을 예정이다. GTL 사업의 공사 규모는 38억9000만 달러에 이른다.

투르크메니스탄 방문 당시 또 하나의 경제 성과로 꼽힌 제2 가스석유화학 플랜트 사업도 올해 하반기 최종 타당성 조사를 거쳐 내년 하반기 본계약이 체결될 것으로 보인다. 당시 투르크메니스탄은 현대종합상사와 시내버스 교체사업 추진 MOU를 맺었다. 이 사업도 순조롭게 진행돼 올해 말부터 2020년까지 시내버스 900대를 공급한다. 1억 달러 규모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2017년 ‘아시아 실내무도대회’가 열리는데, 이 대회 때 한국산 시내버스가 투르크메니스탄의 거리를 누비는 광경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과 함께 방문한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태양광 실증단지 구축 MOU’가 주목받았다. 지난해 12월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태양광산업협회는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공동으로 우즈베키스탄 나망간 지역에 100kW 규모의 태양광 실증단지를 완공했다. 이 단지는 양국 정부가 공동 운영하다가 올해 말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단독으로 운영하게 된다. 박 대통령 순방 6개월 만에 후속 조치가 완료된 것이다.

연평균 일조일수가 320일에 달하는 우즈베키스탄은 2030년까지 4G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금액으로는 12조 원에 달한다. 한국 정부는 이 실증단지를 발판으로 우즈베키스탄 태양광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다만 아직 결과를 장담하기 힘든 상태다. 지난해 9월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100MW 규모의 사마르칸트 태양광 발전소 건설 공사를 입찰에 부쳤다. 여러 한국 기업이 컨소시엄을 꾸려 입찰에 참가했으나 결과를 낙관하긴 힘들다. 세계 최대 태양광 모듈 제조업체인 중국의 ‘잉리솔라’ 등 중국 업체들이 가세한 결과다. 7월경 입찰 결과가 나오는데, 실증단지 건설 효과가 태양광 시장 선점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청와대는 지난해 6월 카자흐스탄 순방 당시 듀셈바이 광구의 연·아연 공동 탐사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며 그해 12월경 광업권을 획득해 본격 탐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일정은 지연되고 있었다. 카자흐스탄 내부적으로 광업법이 개정돼 최종 승인 절차가 늦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달 중 광업권을 발급받아 올해 안에 탐사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게 한국광물자원공사의 설명이다. 이곳에는 1300만 t 규모의 연·아연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된다.

박 대통령과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당시 텡기스 유전 확장 프로젝트를 공동 추진하기로 약속했다. 일각에서는 저유가로 이 프로젝트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카자흐스탄 정부는 최근 현지 언론을 통해 “공사가 지연되지 않고 제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현재 대우조선해양은 텡기스 유전 확장을 위해 육상 원유 생산설비를 제작하고 있다.

‘세일즈 외교’에 초점이 맞춰진 중앙아시아 3개국 순방 당시 경제 성과는 다소 일정이 지연된 경우는 있었지만 대부분 순항하고 있었다.

선진국과의 공동연구 및 인적 교류도 차질 없나


우리나라가 개발도상국과 주로 대형 건설 프로젝트 협력에 나선다면 선진국과는 공동연구나 인적 교류를 위한 MOU를 많이 맺는다. 이들 사업은 어떤지 들여다봤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독일을 방문해 산업기술 공동연구 MOU를 맺었다. 한국 산업부와 독일 연방경제에너지부가 공동으로 연구개발(R&D) 기금을 마련해 신기술 개발에 나서자는 것이었다. 실제 지난해 한국과 독일은 35억 원가량의 기금을 투입해 스마트에어백, 초정밀 레이저 개발 등 6개 연구 과제를 지원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올해도 예산 17억 원을 이 사업에 배정해 독일 정부가 이에 상응하는 예산을 투입하면 2년간 R&D 기금이 70억 원에 이르게 된다. 독일의 정밀기술을 한국이 공유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지난해 1월 스위스 방문 때는 산업인력 양성협력 MOU를 맺었다. 마이스터고 졸업자 중 20명을 선발해 1년 차는 국내에서, 2년 차는 스위스에서 교육훈련을 시켜 글로벌 전문 기술인으로 양성한다는 게 목표였다. 이 사업은 아직 구체화되진 않았다. 현재 학생들을 선발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스위스가 독일어를 써 ‘언어 장벽’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독일어 교육을 먼저 시키고 스위스 기업의 한국지사에서 6개월가량 현지 문화를 익히도록 한 뒤 스위스로 보낼 계획이다. 스위스 파견은 올해 말에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순방 성과로 발표된 각종 협력 사업들은 대체로 큰 차질 없이 추진되고 있었다. 여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정상 간 합의는 양국 정부가 최우선 정책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라며 “기획재정부도 예산 배정 시 순방 관련 후속사업 예산은 깎지 않고 해당 부처의 요청을 거의 들어주기 때문에 사업이 순탄하게 진행된다”고 말했다.

정상 간 만남이 문제 해결의 열쇠

청와대는 양국 정상 간 만남이 국내 기업의 해외 수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순방의 경제적 효과가 정상회담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을 때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에게 칸딤 가스처리시설 프로젝트와 관련해 사업의 조속한 승인을 요청했다. 당시 현대엔지니어링은 칸딤 가스처리시설 프로젝트를 수주했으나 우즈베키스탄 정부의 승인이 지연되면서 수주 자체가 불투명해진 상황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지역에서 연간 가스 600만 t, 황 7만 t 등을 생산하는 우즈베키스탄 최대 가스처리시설 건설 사업이다. 박 대통령의 요청 이후 벽에 막혔던 사업이 활로를 찾았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2013년 9월 베트남 방문 때는 하나은행의 호찌민 지점 인가 문제를 해결했다. 당시 하나은행은 2007년 베트남 현지사무소 설립 이후 여러 차례 지점 전환을 추진했지만 베트남 정부는 외국계 은행 신규 진입을 계속 제한해 왔다. 당시 박 대통령은 정상회담 의제로 양국의 금융협력 강화를 포함시켰다. 회담 성과는 즉시 나타났다. 그해 10월 베트남 정부는 외국계 민간은행으로는 처음으로 하나은행에 지점 설립을 인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상회담에서 해외 진출 기업의 ‘손톱 밑 가시 뽑기’ 사례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볼멘소리도 있어

하지만 일부 기업에서는 해외 순방과 관련해 볼멘소리도 나온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만나면 현지 정부나 기업의 이목을 끄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면서도 “하지만 대통령이 외국 정상을 만나 교역의 물꼬를 트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과거에 기업들이 해외에 진출하고 싶어도 국교가 수립돼 있지 않거나 현지 사정을 잘 몰라 진출을 못 하는 경우가 있었다”며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유로 해외로 진출하지 못하는 기업은 거의 없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오히려 대통령이나 정부가 미리 진출한 국내 기업의 도움을 받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그럼에도 국내만 오면 경제민주화다, 동반성장이다 하면서 대기업만 옥죄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 中企엔 기회의 장… 일각 “실적 압박 부담” ▼

순방 성과를 많이 만들기 위해 기업에 부담을 전가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상사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순방 성과를 많이 만들려다 보니 산하기관에 ‘뭐라도 만들어 내라’고 압박하고, 다시 산하기관은 업체들을 압박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중소기업에는 ‘새로운 기회’

일부 대기업에서는 대통령의 순방 성과를 높이기 위해 동원되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지만 중소기업의 상황은 많이 달라 보인다. 박근혜 정부 들어 올해 3월 중동 순방 때부터 청와대는 해당 국가에서 일대일 비즈니스 상담회를 열고 있다.

중동 순방 당시 일대일 상담회를 통해 모두 44건, 1조 원 상당의 즉석 계약이 체결됐다. 당시 일대일 상담회에 참여한 한국 기업 115개 가운데 91%인 105개는 중소·중견기업이었다. 과거 순방 때는 주로 보여주기식 기업 전시회가 주를 이뤘으나 보다 실질적 성과를 올리자는 취지에서 일대일 상담회를 도입한 뒤 중소·중견기업들이 혜택을 보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일대일 상담회를 위해 지출한 정부 예산이 3억 원 정도”라며 “3억 원을 투입해 1조 원의 성과를 거뒀으니 3000배 이상의 효과를 낸 셈”이라고 말했다.

올해 4월 중남미 순방 때도 일대일 상담회를 통해 7000억 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에도 일대일 상담회에 참여한 한국 기업 76개 업체 중 96%인 73개가 중소기업이었다. 당시 물처리 엔지니어링 업체로 처음 상담회에 참여한 부강테크 관계자는 “누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한국의 중소기업을 신뢰하겠느냐”며 “하지만 정상과 동행하니 개별 방문 때보다 신뢰를 얻기 쉬웠다”고 말했다.

국내 현안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해외 순방이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으로 연결되는지를 두고 여러 뒷말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청와대는 이런 비판을 의식해 순방 성과를 높이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인다. 정부 관계자는 “조만간 순방 성과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널리 알리기 위한 토론회도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재명 egija@donga.com·이상훈·김호경 기자
#박근혜#순방#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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