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특집 커버스토리]한국 외식문화 변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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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짜장면의 추억

최근에는 외식 장소로 한식뷔페가 인기를 끌고 있다. 제철 식재료와 지역 특산물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한식뷔페의 특징. 동아일보DB
최근에는 외식 장소로 한식뷔페가 인기를 끌고 있다. 제철 식재료와 지역 특산물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것이 한식뷔페의 특징. 동아일보DB
‘마지못해 꺼내신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짜장면 하나에 너무나 행복했었어.’

1998년 12월 데뷔한 남성 그룹 god의 1집 앨범 타이틀곡 ‘어머님께’의 일부분이다.

적지 않은 이들은 ‘어려서부터 우리 집은 가난했었고, 남들 다 하는 외식 몇 번 한 적이 없었고’로 시작되는 이 노래 가사가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고들 했다. 모처럼 중국집에 갈 때면 짜장면과 짬뽕 중에 어떤 것을 먹을지 한참을 고민했던 기억, 아버지가 통 크게 탕수육이라도 시킬 때면 감격했던 기억이 아마도 가슴 한쪽에 남아있기 때문일 테다.

외식(外食). 집에서 해 먹지 않고 밖에서 사 먹는 행위. 1980년대 초까지도 외식이 흔한 풍경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람들은 졸업식이나 어린이날, 어버이날 또는 생일처럼 특별한 날에 평소 먹지 못하는 특별한 음식을 먹는 일을 외식으로 여기곤 했다. 실제로 1980년대 초 가계비 지출에서 외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1∼2%에 불과했다. 같은 시기 가계비의 12%를 외식비로 썼던 일본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지금이야 밖에서 음식을 사먹는 게 더이상 특별한 일은 아니다. 문을 나서면 수많은 먹을거리가 유혹의 손길을 보낸다. 심지어 집보다 밖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경우가 더 많은 이들도 적지 않다. TV에서는 프랑스, 일본,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요리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래도 외식이라는 단어가 아직도 누군가에게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것은 바로 가족과 함께한다는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동아일보는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시대별로 인기를 끌었던 각종 외식 종류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외식, 그리고 그 의미 등을 소개한다.  
▼ “세월따라 메뉴 바뀌었지만… 한끼의 情 새록새록” ▼

“제가 8남매 중 막내예요. 10명이 다 같이 외식을 하기가 어디 쉽겠어요. 갈비라도 뜯으려면 그게 얼마인데. 어쩌다 아빠가 통닭을 사와도 나한테까지 돌아오는 건 거의 없었지요.”

서울 관악구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윤모 씨(47·여)는 “농담을 조금 보탠다면 고기를 마음껏 먹고 싶었던 예전 기억이 떠올라 고깃집을 연 것”이라고 말했다.

40대 이상 국민 중 이런 기억을 가진 사람이 윤 씨뿐일까. 사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외식은 그다지 장려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행동은 ‘근검절약과 저축만이 살길’이라는 사회 분위기에 반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본보 1974년 2월 14일자에서 다룬 ‘주부들이 내어놓은 절약생활 아이디어’를 보면 “가족이 외식은 절대로 안 한다. 어린이와 남편에게도 도시락을 날라다 준다”고 할 정도였다. 실제 일부에서는 외식을 ‘뿌리 깊은 암’으로 보고 고쳐야 할 병폐로 지적하기도 했다.



고급 고깃집 속속 등장한 1980년대

“음식을 밝히면 손가락질을 받던 시대였어요.”

강헌 대중음악평론가는 1980년대 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황교익 음식평론가와 함께 음식 관련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강 씨는 방송에서 “그래도 ‘오늘 먹은 한 끼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맛집을 찾아다녔다”고 했다.

손가락질을 당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도 중산층 이상을 타깃으로 하는 고급 식당은 속속 생겨났다. 1980년대 초에는 서울 강남 등지를 중심으로 ‘삼원가든’ 같은 고급 고깃집, 외국 프랜차이즈 등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경향신문은 1982년 11월 11일자에서 서울 강남의 새 풍속도 중 하나로 논현, 신사, 서초 등지에 속속 등장한 전원갈빗집을 꼽았다.

이 신문은 “이곳의 전원갈빗집들이 수십억 원을 투입해 1000여 평의 광대한 대지에 고급 관상수, 인공폭포, 정자 등을 차려 놓아 온갖 자연물의 만화경(萬華鏡)을 연상케 한다”고 표현했다. 서울 시내 고급 호텔들도 뷔페 등을 차려 놓고 손님을 끌어모았다.

그래도 이런 음식점이 누구나 손쉽게 찾을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1982년 당시 호텔신라의 뷔페식당 ‘샹그리라’의 점심식사와 저녁식사 요금(대인 기준)은 각각 1만1000원과 1만3000원. 당시 1980년대 초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350원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0배 이상 비싼 수준이다.

외식의 패러다임 바꾼 패스트푸드, 패밀리 레스토랑

‘외식산업이 몰려오고 있다.’

1984년 2월 21일자 동아일보 3면 톱기사 제목이다. 기사에서는 미국 ‘빅보이’와 제휴한 ‘아메리카나’를 비롯해 ‘던킨’ ‘코널리’ 등이 1979년 문을 연 ‘롯데리아’에 대항해 점포를 늘리고 있고 미국 ‘버거킹’도 점포를 열 준비를 마쳤다고 소개했다.

당시 젊은이들에게 패스트푸드점은 신세계였다. ‘뉴 키즈 온 더 블록’의 음악을 들으며 롤러스케이트장을 찾던 10, 20대 젊은이들이나 대도시 직장인들이 가볍게 한 끼를 때우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을 찾았다.

1990년대에는 패밀리 레스토랑이 외식산업의 전성기를 열었다. 1988년 미도파가 선보인 ‘코코스’를 시작으로 ‘TGI 프라이데이스’(1992년) ‘스카이락’(1994년) ‘베니건스’(1995년) ‘빕스’(1995년) ‘아웃백’(1997년) 등이 잇따라 문을 연 것이다.

전반적인 외식산업의 규모도 성장을 거듭했다. 1995년 통계청이 내놓은 ‘통계로 본 광복 이후 한국인의 문화생활변천’ 자료를 보면 외식비가 문화생활지출 비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65년 11.2%에서 1994년 44.8%로 늘어났다. 통계청은 “자가용 이용이 보편화되고 가족 단위 외식 등 여가활동이 늘어난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패스트푸드점과 패밀리 레스토랑의 인기는 한동안 서울 등 대도시에 국한된 편이었다. 읍면 단위 지역에 사는 이들에게 맥도날드나 롯데리아 같은 패스트푸드점은 TV, 신문에서나 볼 수 있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 대신 ‘달라스’ 같은 동네 햄버거가게가 욕구를 채워주는 대체재였다. 가족들끼리 외식을 할 때도 패밀리 레스토랑 대신 골목 어귀에 자리 잡은 고기뷔페로 대신했다. 방학이 끝나고 반 친구들이 다시 교실에 모일 때면 “서울에 놀러갔다가 무얼 먹고 왔다”는 식의 자랑도 흔한 대화 소재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누군가에게는 드라마에 나오는 외식 모습이 현실과 괴리된 것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본보 1990년 1월 22일자 기사를 보면 당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달빛가족’에 대해 “전반적인 집안 형편과는 맞지 않는 잦은 외식을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서민들의 가족 단위 외식은 아직도 한식이 주를 이뤘다. 한국식품개발연구원이 1992년 외식산업의 음식별 연간 판매량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이 식당에서 가장 많이 사먹는 음식은 불고기 정식이었고 다음은 갈비탕, 한정식 순이었다. 짜장면은 9위였고 양식 중에서는 비프가스(커틀릿)와 돈가스가 각각 11, 12위에 올랐다.

주 5일제, 웰빙 확산에 외식도 웰빙으로

“남편 회사가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하면서 보너스 200%를 줄이고 임금을 동결했다. 자녀 학원을 끊고 외식은 아예 없앴다.”

1997년 말 불어닥친 외환위기는 외식산업을 위축시켰다. 그해 12월 18일자 동아일보에 소개된 한 주부의 사연은 당시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보여준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외식업체들의 몸부림도 이어졌다. 길거리에는 ‘10년 전 또는 20년 전 가격에 드립니다’는 음식점의 광고 전단이 넘쳐났다. 롯데리아는 햄 한 조각과 달걀을 넣은 ‘IMF버거’까지 990원에 내놓았다.

침체된 외식시장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2004년 도입된 ‘주 5일 근무제’ 역시 가족 외식 트렌드에 변화를 불러왔다. 금요일이면 동료들과 술을 마시는 대신 일찍 퇴근해 가족들과 외식을 하고 대형마트 등에서 야간 쇼핑을 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 게다가 2000년대 후반 불어온 ‘참살이(웰빙)’ 트렌드는 외식산업 지도를 바꿔놓았다. 사람들이 육식보다는 채식을 찾고, 유기농 식단에 관심을 쏟기 시작한 것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이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마르쉐’ ‘씨즐러’ 등은 2013년 영업 부진으로 문을 닫았다. 빈틈을 파고든 것은 한식뷔페다. 비싸고 양이 많다는 평을 받아온 한정식을 좀 더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게 하고 제철 식재료와 지역 특산물 등을 써서 건강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을 끌어모았다.

사람들에게 이제 외식은 일상이 됐다. 기자처럼 지방에서 살다 도시에 정착한 지 20년 가까이 된 이들도 패밀리 레스토랑에 갈 때면 더이상 메뉴판의 다양한 샐러드와 스테이크를 보며 어떤 것을 시켜야 할지 혼란스러워하지 않는다. 과거 대학 시절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소개팅을 하기로 했는데 어떤 음식을 시켜야 하느냐”던 후배의 질문도 이제는 웃으며 꺼내는 옛날 얘기가 됐다.

인터넷과 TV, 신문 등에도 다양한 먹을거리가 사람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이처럼 발전을 거듭해 온 다양한 먹을거리가 우리의 만족감도 높여주고 있을까. 황교익 음식평론가는 “음식 방송이 늘어나는 것은 사람들이 우리 앞에 있는 음식들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무엇을 먹느냐보다는 누구와 먹느냐가 만족감을 높이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 가정의 달, 예전처럼 조금은 특별한 마음을 담아 가족들과 함께 추억의 장소를 찾아 외식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먹을거리의 홍수 속에서도 변하지 않을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그곳에서 말이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외식문화#변천사#짜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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