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꿈을 만나다]‘미술품 경매사’ 손이천 씨 / ‘문화재보존과학자’ 박학수 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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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천 미술품 경매사(가운데)는 강원 동해광희고 2학년 구혜인 양(오른쪽)과 서울 진명여고 3학년 양윤빈 양을 만나 “미술품 경매사를 꿈꾼다고 반드시 진로를 미술로 정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손이천 미술품 경매사(가운데)는 강원 동해광희고 2학년 구혜인 양(오른쪽)과 서울 진명여고 3학년 양윤빈 양을 만나 “미술품 경매사를 꿈꾼다고 반드시 진로를 미술로 정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 긴장감 흐르는 미술품 경매현장 ‘지휘자’ ▼

고교생이 만난 손이천 미술품 경매사


“오늘 소개해드릴 작품은 최근 각광받는 작가의 단색화입니다. 2억 원에서 출발해 1000만 원씩 호가하겠습니다. 응찰하실 분들은 번호표를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78번 고객님 2억1000만원 응찰하셨습니다. 90번 고객님 2억2000만 원 하시겠습니까?”

고가의 미술품을 사려는 사람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미술품 경매 현장. 현장에 모인 수백 명의 눈과 귀는 미술품 경매사의 손짓과 목소리에 집중된다. 미술품 경매사는 미술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고객에게 팔기 위해 경매를 진행하는 전문가.

미술에 관심이 많은 강원 동해광희고 2학년 구혜인 양과 서울 진명여고 3학년 양윤빈 양이 최근 서울 강남구에 있는 케이옥션 사무실에서 손이천 미술품 경매사를 만났다.

미술품 공부하고 홍보도 하는 ‘멀티플레이어’

“어떤 과정을 거쳐 경매를 준비하시나요?”(구 양)

구 양의 질문에 손 경매사는 “경매는 경매사 혼자만 준비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고객에게 작품을 위탁받아오는 스페셜리스트, 위탁된 작품을 전시하는 작품관리원 등 많은 전문가가 유기적으로 협업해 ‘경매’라는 큰 이벤트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품 경매회사인 케이옥션에선 매년 3, 6, 9, 12월 총 네 번의 큰 경매를 연다. 매번 경매에서 입찰되는 작품들의 총 금액은 80억∼100억 원에 이른다.

규모가 크다 보니 준비기간도 길다.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 작품을 위탁받는 기간이 6주, 위탁된 작품들을 소개하는 그림책인 도록을 제작하는 데만 3주가 걸린다. 제작한 도록을 잠재적인 고객들에게 배송해 경매를 홍보하고 경매에 나올 작품들을 고객들이 직접 볼 수 있도록 사전 전시하는 기간도 2주가량 된다.

“경매가 열리기 전 도록을 제작하고 경매를 홍보하는 일도 맡고 있어요. 경매에 출품되는 작품의 정보를 파악하기 위해 미술품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하지요. 작품별로 경매를 어느 정도 가격에서 시작할지도 구체적으로 논의한답니다.”(손 경매사)

정확한 손짓과 발음 위해 연습 또 연습

손 경매사는 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하고 2009년 8월 케이옥션 홍보팀에 입사했다. 당시 회사로부터 “경매를 진행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은 그는 6개월이 넘게 연습을 한 뒤 2010년 6월 첫 경매에 나섰다.

양 양이 “경매를 진행하기 위해 어떤 연습을 했느냐”고 묻자 손 경매사는 “경매에 참가하는 고객을 가리키는 손짓과 몸동작을 자연스럽게 하고, 고객의 번호를 부른 뒤 작품의 금액을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 퇴근 후 매일 거울 앞에 서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360번 번호표를 든 손님이 350만 원에 응찰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금액과 번호표를 바꿔 말하는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해요. 오르는 경매금액을 정확하게 제시하고 수백 명이 모인 경매현장을 두 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진두지휘하기 위해선 체력, 집중력, 섬세함이 모두 필요합니다.”(손 경매사)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 성장가능성 높아

손 경매사는 우리나라 미술품 경매 시장에 대해 “200∼300년 된 외국 경매시장에 비해선 아직 역사가 오래되지 않았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경매 시장이 활발해지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손 경매사는 미술품 경매사를 꿈꾸는 고교생들에게 “기본적으론 미술에 관심이 있어야 하지만 꼭 진로를 미술분야로 정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저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공부한 뒤 미술에 대한 관심이 커져 대학원에서 예술기획을 전공했어요. 경영학을 전공한 경매사도 있답니다. 미술품 경매사는 경매 회사에서 경매 진행 외에도 도록 제작, 경매 홍보, 외국 미술품 트렌드를 파악하는 것 등 다양한 일도 진행해요. 경제, 외국어, 홍보 등을 공부하고 미술에도 관심을 가지면 도움이 될 거예요.”(손 경매사)

경기 용인백암고 2학년 황민수 양(왼쪽)과 서울 혜원여고 2학년 정다운 양(오른쪽)은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박학수 학예연구사를 최근 만났다. 박 씨는 “문화재를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려면 역사적 배경지식과 새로운 복원기술도 알아야 하는 만큼 폭넓은 독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백암고 2학년 황민수 양(왼쪽)과 서울 혜원여고 2학년 정다운 양(오른쪽)은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 박학수 학예연구사를 최근 만났다. 박 씨는 “문화재를 복원하고 보존하는 일을 하려면 역사적 배경지식과 새로운 복원기술도 알아야 하는 만큼 폭넓은 독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 “파손된 유물에 새 생명 불어넣어요” ▼

고교생이 만난 박학수 문화재보존과학자


문화재보존과학자는 발굴된 문화재를 원형대로 복원하고 오랜 시간 보관할 수 있게 보존 처리하는 일을 한다. 파손된 유물을 치료한다는 뜻에서 ‘문화재 의사’로도 불린다.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서울 혜원여고 2학년 정다운 양과 경기 용인백암고 2학년 황민수 양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존과학부 박학수 학예연구사를 최근 만났다.

9실(室)9색(色) 보존과학부

먼저 정 양이 “보존과학자는 어떤 일을 하나요”라고 묻자 박 연구사는 “연구실을 직접 둘러보며 살펴보자”고 제안했다.

보존과학부는 문화재분석실과 더불어 △금속 △목제(木製·나무로 만든 물건) △목칠공예품 △서화(글과 그림) △토기·도자기 △석제(石製·돌로 만든 물건)·벽화 △직물 △박물관환경을 연구하는 곳 등 총 9개 연구실로 구성된다.

우선 유물이 박물관에 들어오면 문화재분석실에선 △언제 제작됐는지 △어떤 성분으로 이뤄졌는지 △어떻게 제작됐는지 등을 조사한다. 조사를 마친 유물은 서화, 직물 등 재질에 따라 이를 담당하는 연구실에서 복원·보존 처리된다.

복원 및 보존 처리 과정은 유물의 재질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유물에 묻은 흙, 녹 등 이물질을 제거한 뒤 부식되지 않도록 약품 처리한다. 이후 파편을 붙이는 등 손상된 부분을 수리하고 박물관에 전시할 수 있도록 채색하거나 액자에 넣는 작업을 한다.

황 양이 “서화실은 어두운데 금속실은 환하네요”라고 말하자 박 연구사는 “소재 특성에 따라 연구실과 전시실 환경이 다르다”면서 “그림은 조도가 높으면 색이 바래지만 금속은 빛에는 변색되지 않아 불을 환하게 밝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유물의 특성에 따라 온·습도와 조도, 대기오염물질 등 박물관 환경을 관리하는 곳이 박물관환경실이다.

복원된 유물, 끈기의 결과물

“어떤 계기로 문화재보존과학자가 되셨나요?”(황 양)

“대학원에서 금속공학을 전공하며 금속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금속이 부식돼 문화재가 사라지는 게 안타까웠는데 ‘내 전공도 문화재 보존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지원하게 됐지요.”(박 연구사)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박 연구사는 “2013년 동료 연구원이 경주 금관총 환두대도(고리자루 큰칼)에서 ‘이사지왕’이라는 글자를 발견했는데, 100여 년간 알려지지 않았던 칼의 주인을 밝혀낸 것”이라며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발견했을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답했다.

반대로 가장 힘든 순간은 연구에 진척이 없을 때다. 현미경으로도 관찰하기 어려울 정도로 유물 크기가 작거나 현재의 기술로 유물 복원이 어려울 땐 연구를 수년 씩 진행해야 한다는 것. 박 연구사는 “이런 점에서 끈기 있는 사람이 보존과학자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보존과학자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역할

보존과학자가 되려면 대학 역사학과에 진학해야 할까. 박 연구사는 “꼭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문화재보존학과에 진학하거나 박 연구사처럼 유물의 재질과 관련된 전공을 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것.

“저는 금속을 전공했지만 문화재복원을 하려면 금속 외의 분야도 알아야 해요. 예를 들어 금속활자를 복원하려면 연도별로 어떤 활자가 만들어졌고 해당 활자로 만들어진 책은 무엇이 있는지를 꿰고 있어야 하지요.”(박 연구사)

전공 서적만 읽기보다는 폭넓은 독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화재 복원을 하기 위해선 금속의 특성 외에 역사적 배경지식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컴퓨터단층촬영(CT)과 3차원(3D) 프린터 등 새로운 분야의 기술을 문화재 복원 및 보존에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CT와 3D 프린터를 이용하면 유물을 자르지 않아도 내부를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지요. 이처럼 보존과학자는 과거와 미래를 잇는 역할을 한답니다.”(박 연구사)

글·사진 김재성 기자 kimjs6@donga.com
글·사진 윤지혜 기자 yo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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