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친 아이 26분 방치… 짓밟힌 세림이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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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시행 석달째, 꿈쩍않는 통학버스 안전의식

어린이 통학차량 안전기준을 강화한 ‘세림이법(개정 도로교통법)’이 1월부터 시행됐지만 통학차량 인명 사고가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 지난달 10일 경기 광주시에서 4세 남자아이가 통학버스에 치여 숨진 데 이어 같은 달 30일 용인시에서 6세 여자아이가 달리던 태권도장 통학차량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었다.

이번에 사고가 난 용인 태권도장 통학차량은 세림이법에서 요구하는 안전규정을 전혀 지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2일 경기 용인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사고를 낸 태권도장 관장 김모 씨(37)는 통학차량을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지도 않았고 통학차량에 안전표지나 표시등과 같은 안전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승차한 어린이에게 안전띠를 매라고 지시하거나 운전자 외에 성인 보호자가 동승해야 한다는 규정도 지키지 않았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어린이 통학차량을 신고하고 안전시설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통학차량 운전자의 안전의식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라며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통학차량 운전자 안전교육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3월 30일 오후 5시 45분경 통학차량인 승합차 문이 갑자기 열려 도로 위로 떨어진 뒤 의식을 잃은 양모 양(6)을 바로 병원에 옮기지 않았다. 학원에 먼저 들러 차에 남은 학생들을 내려준 뒤 119에 신고했다. 이에 따라 응급차량에 양 양을 인계하기까지 26분이나 걸렸다. 양 양의 아버지(33)는 “바로 신고하지 않고 다친 아이를 차에 싣고 다녔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며 “관장이 사고 직후 차 안의 아이들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는 등 사고 감추기에 급급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승객추락방지 위반 혐의로 김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연이은 통학차량 사고에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의 불안감과 분노는 커지고 있다. 초등학교 자녀 두 명을 둔 맞벌이 주부 이모 씨(36)는 “아이를 직접 데려다 주기 어려운 부모가 많아 아이들의 안전을 온전히 통학차량 기사에게 맡기는 상황”이라며 “세림이법이 생겼지만 어린이 사고가 계속 발생하니 걱정이 크다”고 말했다. 이번 사고 직후 학부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불안감과 분노를 담은 글이 연이어 올라왔다. 학부모들은 “다친 아이를 그대로 방치하다니 이해가 안 된다” “불안해서 아이를 학원 차에 태우지 못하겠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7일 오전 11시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주민자치센터에서 전문가와 함께 ‘안전한 통학차량을 만들기 위한 엄마들의 토론회’를 개최해 학부모 의견을 모을 예정이다.

권오혁 hyuk@donga.com·김재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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