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칠거지악 “아들딸 키 작다고 눈총”… “친정에 애 못맡긴 죄인”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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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95주년][2020 행복원정대/엄마에게 날개를]<1>엄마는 고달프다
100인 심층 인터뷰

《 지금 한국의 20∼50대 엄마들이라면 많은 이가 공감할 만한 ‘신(新)칠거지악’이 있다. 알고 보면 전혀 ‘내 잘못’이 아닌데, 우리 사회의 팍팍한 현실과 엇나간 시선들 때문에 마치 ‘내가 뭔가를 잘못한 것처럼’ 느끼게 만드는 일들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엄마’ 50명과의 심층 인터뷰에서 이들의 행복을 방해하는 신칠거지악을 확인했다. 일곱 가지 사례를 엄마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전한다. 》

① 아이가 몸 약한 죄… “저도 정성 쏟았어요”


딸 둘을 키우는 ‘워킹맘’입니다. 유치원 다니는 둘째가 아토피가 심했습니다. 이웃 사람들이 “임신했을 때 뭘 잘못 먹었나 보네”, “애 엄마가 덥게 키우나 봐”라며 엄마가 뭔가 잘못해서 아이가 잘못된 것처럼 말할 때 정말 짜증이 나고 힘들었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남편은 키가 180cm가 넘지만 우리 아이들은 저를 닮았는지 좀 작은 편입니다. 동네 아줌마들은 제 키를 흘끗 보고는 “엄마가 옆에서 잘 챙겨주지 못해서 그런가 보네”라는 소리도 합니다. 남편도 평소엔 아이 건강이나 영양 문제는 “당신이 알아서 해”라고 발뺌하면서 관심도 두지 않다가 정작 아이에게 문제가 생기면 “도대체 애들을 어떻게 챙겨 온 거야”라며 뒤늦게 훈수를 두려고 합니다.(김모 씨·39·교사)

② 자녀 공부 못하는 죄… “만날 놀다가 엄마탓”


우리 가족은 뭔가가 잘못되면 모든 게 내 탓이라고 합니다. 자기가 키가 작아도, 또 친구가 안 생겨도 “엄마가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느냐”면서 들볶기만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게 성적 문제죠. 고등학교 3학년생 아들을 둘이나 둔 저는 애들이 다닐 학원 고르는 걸 전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좀 못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엄마가 날 제대로 ‘매니지’ 했어야지” 하며 나한테 비난의 화살을 돌립니다. 심지어 “평소에 내가 TV 보는 것 좀 말리지 그랬어”, “엄마는 우리에게 공부하라 말할 자격도 없어”라는 말까지 들으면 아무리 어미지만 자식한테 화도 나곤 합니다. 물론 남편이라고 도움이 될 건 없죠. 오히려 애들 편에 서서 저를 탓합니다.(허모 씨·50·주부)

③ 회사 일로 바쁜 죄… “직장맘은 괴로워요”


지난해 6세 큰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싸웠습니다. 하지만 난 회사에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어린이집을 못 갔고 그 애 엄마는 바로 뛰어갔습니다. 나중에 아이한테 들었는데 그 애 엄마가 자기를 양호실로 끌고 가면서 욕을 했다고 하더군요. “이 거짓말쟁이야. 넌 가정교육 그렇게 받았니?”라고요. 맞은 건 분명 내 아들인데 생전 처음 보는 어른에게 그런 수모까지 당했다니 눈물이 펑펑 났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묻더군요. “근데 엄마, ‘가정교육’이 뭐야?” 그 순간 내가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러는 건지,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우리 회사는 ‘직장맘’을 많이 이해해 주는 분위기이긴 합니다. 하지만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겨 반차나 휴가를 내려면 항상 죄인처럼 눈치를 보게 됩니다.(윤모 씨·40·회사원)

④ 집안일만 하는 죄… “살림은 장난인가요?”


고등학생 자녀가 둘 있는 주부입니다. 애들을 매일 학원에 태워다 주는데 가끔 이런 말을 듣습니다. “내 친구 ○○이 있지? 걔 엄마는 의사래. 아 그리고 △△ 엄마는 **기업 다닌대.” 아이들이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직장 없이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엄마가 부끄럽다 생각하는 건 아닌지 하고 괜히 옆구리가 찔립니다. 한번은 동네 엄마들 모임에 나갔습니다. 거기서 만난 한 전업주부 엄마는 요즘 아파트를 사고팔면서 재미를 좀 본 모양입니다. 재테크를 꽤 성공적으로 한 거죠. ‘나도 뭘 좀 해야 하나’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남편이 지나가듯이 한마디 하더군요. “내 친구 와이프는 펀드니 뭐니 하면서 집에 있으면서도 꽤 돈을 벌던데, 당신은 왜 그런 덴 관심이 없어? 나도 혼자 버니까 힘들다고.”(한모 씨·44·주부)

⑤ 친정엄마 안계신 죄… “나도 友軍 있었으면”


미취학 딸 둘이 있는 맞벌이 주부입니다. 친정 엄마는 돌아가셨고 시어머니가 낮 동안 아이들을 봐주세요. 오후 7시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시어머니는 바통 터치하고 집으로 가시기 바쁩니다. 남편은 저녁 준비나 애들 목욕, 청소, 빨래 등을 자기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맞벌이’지만 ‘맞살림’은 아닌 거죠. 시어머니에게 매달 생활비를 드리지만 전 그저 ‘자기 일 한다고 애들 맡겨 죄송한 며느리’일 뿐입니다. 제가 말이 좋아 전문직이지, 지금은 육아 때문에 개점휴업 상태입니다. 이대로 평생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영원한 주변인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엄마’라는 말은 참 잔인한 말입니다. 오랜만에 친구가 보자는데 선뜻 응할 수 없을 때, 내 몸이 아플 때, 든든한 친정 엄마 있는 친구를 볼 때 너무 서럽습니다.(이모 씨·36·IT 프리랜서)

⑥ 외모 신경 안쓴 죄… “차려입고 애 보라고?”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고 아기를 낳으면서 자연스럽게 ‘전업맘’이 됐습니다. 아기를 돌보다 보면 제 옷차림이며 머리 모양까지 아기에게 맞춰집니다. 샤워할 때도 아기가 절 찾으니 샤워 시간을 줄이기 위해 머리를 짧게 잘라야 합니다. 아기가 잡아당기지 않으면서 간편하게 묶을 수 있는 길이로요. 귀걸이나 목걸이도 착용하지 않은 지 오래고, 좋아하던 니트도 안을 때 아기가 털을 먹을까 봐 입지 않아요. 아기 엄마들끼리는 농담 삼아 “아기띠 하면 아무리 꾸며도 피란민 같다”고 얘기해요. 아기를 데리고 외출했을 때 예쁘게 차려입은 직장 여성들을 보면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조금 위축되기도 합니다. 외식을 할 때도 아기 의자가 있는지, 아기를 데려가도 괜찮은 곳인지가 최우선 조건이죠. 이러다 영영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최모 씨·35·주부)

⑦ 잘난 남편과 사는 죄… “며느리도 칭찬 좀…”


한번은 시부모님이 저희 집을 찾아오셨습니다. 초등학생인 두 아이가 멋지게 피아노 연주를 했습니다. 시부모님이 박수를 치시며 “아이고, 아빠가 너희를 이렇게 훌륭하게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니”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동안 아이들 교육은 전적으로 내 몫이었는데 내 공도 당신의 자식 것으로 돌리는 시부모님을 보고 무척 속이 상했습니다. 그럼 나는 무엇으로 인정받아야 하나 생각하니 울컥했죠. ‘엄마’로서 제 점수는 스스로 생각해도 그리 높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아이 둘을 낳고 키우면서 내 나름으로는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런데 가끔은 내가 한 노력에 비해 ‘시(媤)월드’에선 인정을 제대로 못 받는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픕니다. 남편은 수시로 “어머님한테 좀 잘해”라고 합니다. 왜 자기가 할 효도를 나더러 대신 해 달라 하는 걸까요.(김모 씨·44·주부)

:: 칠거지악(七去之惡) ::

한국 중국 등 과거 유교 문화권에서 적용된 ‘남편이 아내를 일방적으로 내쫓을 수 있는 7가지 이유’. 공자의 말을 엮은 공자가어(孔子家語)에서 유래했다. 그 7가지는 ①시부모를 잘 섬기지 못함 ②아들을 낳지 못함 ③부정(不貞)함 ④ 질투를 함 ⑤ 나쁜 병이 있음 ⑥말이 많음 ⑦도둑질을 함이다.

유재동 jarrett@donga.com·이새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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