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경 헬기 추락후 4세 딸 열이 펄펄 끓어도 “미안해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6일 15시 56분


“4세 딸이 열이 펄펄 끊지만 차마 부탁하기 어려워서…”

15일 오후 8시 전남 신안군 팔금도 보건지소에 30대 주부가 딸 이모 양(4)을 껴안고 들어왔다. 보건소 공중보건의 류수민 씨(29)가 해열제를 먹었으나 40도까지 오른 열이 내리지 않았다. 보건소는 X레이는 물론 간단한 혈액검사기기조차 없었다.

주민 1200명이 사는 팔금도는 전남 목포에서 서쪽으로 26㎞떨어진 섬이다. 여객선은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에 5, 6편 운항한다. 섬 중심지에는 개인병원이 있지만 오후 6시면 의사가 육지로 퇴근한다.

류 씨는 이 양의 엄마에게 “열이 내리지 않아 위험한 만큼 전문의가 있는 육지병원으로 후송해야 한다. 해경에게 도움을 요청하자”고 했다. 하지만 이 양의 엄마는 “해경이 13일 가거도 헬기 추락으로 힘들 것 같은데 여객선이 운항하는 16일 아침까지 기다려보자”고 했다. 하지만 고열이 지속되자 이 양의 엄마는 발을 동동 구르며 “개인 선박으로라도 딸을 후송하고 싶다”고 했다.

이에 류 씨는 이 양의 엄마를 설득해 15일 오후 8시 58분 해경에 구조요청을 했다. 구조요청을 받은 목포해양경비안전서는 경비정 P-96정을 급파했다. 이 양과 엄마는 P-96정을 타고 40분 만에 목포에 도착했다. 목포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이날 오후 11시 반경에야 열이 내렸다. 목포해경의 섬 지역 주민 긴급 이송 건수는 2012년 185건, 2013년 210건, 2014년 338건으로 매년 늘고 있다. 전국의 섬 3405개 가운데 2119개(62%)가 전남에 있다. 전남 지역 섬 가운데 유인도는 296개이며 주민 수는 16만 9124명에 이른다. 팔금도 보건소 한 관계자는 “해경 헬기 추락사고 이후 섬 지역 주민들은 밤 시간대에 후송 요청하는 걸 미안해하는 분위기”라며 “복지여건이 가뜩이나 열악한 상황에서 더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 된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peneye0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