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봉투 돌리고 2억에 후보매수… 조합장 돈선거 악취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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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판치는 전국 조합장 선거]

“조합장님, 이번에 꼭 당선되고 싶습니다. 후보로 안 나오시면 2억 원 드릴게요.”

지난달 23일 오후 4시 10분경 경남 고성군의 한 호텔 야외주차장. 경남 G축협에서 감사를 지냈던 어모 씨(57)가 갑자기 자신의 승용차 트렁크를 열었다. 안에는 쑥색 쇼핑백이 있었다. 그는 이 쇼핑백을 꺼내 G축협 현 조합장 최모 씨(58)에게 건넸다. 쇼핑백 안에는 1만 원권 3000장과 5만 원권 400장 등 현금 5000만 원이 들어있었다. 최 씨는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췄다. 그리고 어 씨와 헤어지자마자 검찰로 향했다. 창원지검 통영지청은 어 씨를 체포해 구속했다. 검찰은 어 씨를 도와 최 씨 매수에 나섰던 G축협 조합원 김모 씨(47)도 구속했다.

지금 전국에 때 아닌 선거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다. 전국 1328개 농협 수협 축협 산림조합의 수장을 뽑는 3·11 조합장 동시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탓이다. 전체 조합장을 동시에 뽑는 건 사상 처음이다. 제각각 치러지던 선거를 통합해 관리하면 부정 시비가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재까지 상황만 놓고 보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 한쪽에서는 금품, 다른 쪽에서는 비방

전국농협노조는 지난달 14일 경북 김천시의 한 농협 조합장 하모 씨(55)를 대구지검에 고발했다. 노조에 따르면 하 씨는 지난해 12월 10일부터 15일까지 조합 이사와 감사 등 10명에게 부부 동반으로 태국 여행을 보내줬다. 경비 3000여만 원은 전액 농협 예산으로 충당했다. 배우자만 125만 원을 자부담시켰다. 하 씨는 해외연수 명목으로 편성된 예산을 집행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노조는 선심성 불법 선거운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충남 논산에서 농협 조합장 선거에 출마하려던 김모 씨(56·여)도 조합원 150여 명에게 1인당 20만∼100만 원을 건넨 혐의로 구속됐다.

한편에서는 조합원들에게 은밀하게 지지를 호소하거나 유력한 출마 예상자를 깎아내리는 비방행위도 속출하고 있다. 광주시선거관리위원회는 ‘광주 모 농협 조합장에 출마할 예정이니 지지를 당부한다’는 내용의 편지 2000여 통을 보낸 A 씨(58)를 선거법 위반(사전선거운동) 혐의로 광주지검에 고발했다. 그는 지난해 4월 “한 번만 밀어 달라”는 취지의 편지를 직접 펜으로 써 1200여 명에게 발송했다. 이어 같은 해 9월에는 컴퓨터로 작성한 당부의 편지를 1500여 명에게 보낸 혐의도 받고 있다. 강원도선거관리위원회도 출마가 예상되는 현직 조합장을 비방하는 내용의 인쇄물을 조합원 1210명에게 보낸 혐의로 B 씨를 검찰에 고발했다.

3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3·11선거와 관련해 이날까지 183건의 선거법 위반 사실을 적발했다. 선관위는 이 가운데 40건을 검찰에 고발 또는 수사 의뢰했다. 유형별로는 기부행위가 84건으로 가장 많았다.

○ 조합장이 뭐길래


인구가 적은 시골 지역에서 조합장의 위상은 그야말로 막강하다.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조합장이 되면 1억 원 상당의 연봉을 받고 직원 인사권을 갖는다. 싼 이자로 융자되는 각종 지원금 집행 과정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농어민들은 시장 군수보다 조합장의 ‘한 말씀’을 더욱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매번 부정선거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너도나도 조합장 선거에 매달리는 이유다.

실제로 2010년 전남 신안군에선 임자농협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에게서 돈을 받은 주민 1000여 명이 수사를 받았다. 당시 섬 전체 주민이 3700여 명인 것을 감안하면 3명 가운데 1명꼴로 수사 대상에 오른 셈이다. 본보 취재 결과 당시 선거에서 불법·탈법 행위로 사법 처벌을 받았던 후보나 운동원 3명이 이번 선거에도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들은 법원에서 징역 4∼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 설 연휴가 부정선거 ‘대목’

공직선거법이 적용되는 지방선거에서는 출마자가 공식 선거운동 2∼4개월 전부터 예비후보로 등록해 제한적으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공공단체 등 위탁 선거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는 조합장 선거에는 예비후보 등록제가 없다. 연설회나 토론회도 열 수 없다. 후보 등록 후 2주 동안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노인이 많은 지역에서 단기간에 표를 얻으려다 보니 출마 예정자들은 돈과 조직의 유혹에 쉽게 빠져들고 있다.

특히 들뜬 분위기 속에 친인척이 대거 모이는 설 연휴 때 부정선거가 극성을 부릴 가능성이 크다. 노재선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설 선물을 빙자한 금품 살포가 광범위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지만 단속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선관위가 계약직 직원을 채용해서라도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도 불법행위에 대해 일체의 관용 없이 엄정히 대처할 방침이다. 대검찰청 공안부는 전국 18개 지검과 산하 지청의 선거전담검사 전원을 조합장 선거 수사에 투입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조합장 선거는 투표권자가 적고 서로 친밀한 경우가 많아 과거부터 부정이 끊이지 않았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강성명 smkang@donga.com / 광주=이형주 / 대구=장영훈 기자
#조합장 선거#불법 조합장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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