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칙 관행에 ‘레드카드’… 엄정한 법치가 최고의 해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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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제1심포지엄: 선진사회의 기반, 공공성을 확립하자
인촌기념회-동아일보-채널A-고려대 공동주최

석학들의 5대 제언

《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 채널A, 고려대가 6일 공동 주최한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심포지엄에서는 공공성 붕괴의 원인과 대안을 놓고 뜨거운 토론이 벌어졌다. 특히 우리 사회의 공공성을 높이기 위해 큰 정부가 필요한지, 민간 자율성을 확대해야 할지 등에 관한 견해차가 첨예했다. 동아일보는 공공성 확립을 위한 5대 제언을 정리해 사회적 논의와 실천의 토대로 삼기로 했다.》  

선진국의 문턱에 선 대한민국을 더이상 전진하지 못하게 만드는 ‘공공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득권층의 위법행위나 특정 집단의 ‘떼법’에 대해 엄정하고 공정한 법집행이 확립돼야 한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비효율적인 정부와 정치의 역할을 재검토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는 제언도 쏟아졌다. 인촌기념회와 동아일보, 채널A, 고려대가 6일 고려대 경영관에서 공동 주최한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첫 회 심포지엄에서는 이와 함께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책임) 적용 대상을 확대하고 시민윤리 확산을 위한 교육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경영대 LG-POSCO관에서 열린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우리 사회의 공공성 붕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6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경영대 LG-POSCO관에서 열린 ‘선진사회로 가는 대한민국의 과제’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이날 참석자들은 우리 사회의 공공성 붕괴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진단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① 반칙 관행에 ‘레드카드’… 엄정한 법치가 최고의 해법

인촌기념회-동아일보-채널A-고려대 심포지엄에서는 지난해 세월호의 침몰을 한국사회 공공성의 침몰이라고 지적하는 이들이 많았다. 정부와 시민사회는 공공성의 원칙에 따라 세월호 참사를 처리하는 데 실패했고 공적(公的) 가치 대신 사익(私益)만 좇아온 한국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이 불러온 사회적 공분도 압축 성장 과정에서 축적돼 온 불공정 사회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불신이 폭발한 결과라는 해석이 제기됐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대한민국 역사에 쌓여 온 편법과 반칙을 광정(匡正)하지 않고는 더 이상 발전이 어렵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쌓여 왔다”며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반복된 인사 실패, 땅콩 회항 같은 사회 지도층의 초법적 행태가 공정성을 바라는 민심의 역린을 건드렸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사회의 총체적인 공공성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첫 번째 해법으로 ‘엄정한 법 집행’을 제시했다. 법질서에 있어서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는 ‘공정한 룰’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득권층의 위법 행위나 특정 집단의 ‘떼법’에 눈감고 법질서를 책임지는 사법부의 ‘전관예우’가 판치는 사회에서는 양심 있는 시민들도 법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과 도덕이 무너진다는 지적이었다.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는 “법치(法治)는 공공성 회복을 위한 여러 해법 가운데 가장 단기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이라며 “힘없고 모자라는 사람만 억울하게 당한다는 감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법의 집행이 일관성과 엄격성이 있을 때 공공성은 재확립된다”고 강조했다. 이은경 변호사는 “‘원칙대로 법을 지키면 나만 손해 본다’는 인식을 뿌리 뽑아야 정의라는 근본 가치가 바로 선다”고 말했다.  
▼ ② 비대한 정치-규제권력 과감한 수술을 ▼

어느 분야보다 공공성을 우선해야 하는 정부와 정치권이 되레 불공정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윤평중 한신대 교수는 “한국에서는 정치가 다른 영역과 인적 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관료국가의 권한이 시민사회의 힘보다 강하다”며 “이는 가치관의 단원(單元)화와 정치 영역의 비대화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공공성의 회복을 위해 정부와 정치권의 대개조가 급선무라는 데는 의견이 모아졌지만 방법론은 엇갈렸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한국 정부는 지출 규모 면에서 ‘작은 정부’에 속하면서 공공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낮다”며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고 복지국가를 실현하려면 크고 유능한 정부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세계화 시대에 국가는 공공성에 더 충실해야 하며 공직자는 사유재산 행사와 소송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 개입을 최소화하고 작은 정부를 지향해야 한다는 반대 의견도 잇따랐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는 “관피아, 슈퍼갑의 횡포는 정부의 과도한 규제나 권력 때문에 생긴 것”이라며 “정부 역할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규제를 철폐해 민간 자율영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조 경희대 교수는 “공공성 확보를 위해 정치인과 관료가 밀실에서 하는 폐쇄된 예산 작성 과정을 시민에게 부분 개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대통령과 정부, 국회, 정당 등 공적기구의 통치역량이 낮다”며 “지금의 중앙집권제와 대의제를 계속해도 좋은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가 필요한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③ ‘건전한 기업시민’ 사회적 투자 늘리자 ▼

시장경제를 이끄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확대돼야 자본주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임혁백 고려대 교수는 “세계 100대 경제주체 가운데 52개가 다국적기업이며 48개가 국가”라며 “권력 중심이 국가에서 대기업으로 옮아갔으며 대기업이 더이상 사적(私的)인 존재로 머물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기업들은 반세기 만에 한국을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키는 데 기여했음에도 시장경제 질서를 훼손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고도성장기 때 각종 특혜를 누렸고 지금도 독과점, 일감 몰아주기, 편법 상속·증여 등을 통해 시장의 공정성과 공익성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평판연구소가 2013년 조사한 ‘세계 100대 사회적 책임 기업’에도 한국은 삼성전자, LG 2곳만 이름을 올렸다.

이제 한국의 대기업들이 ‘건전한 기업 시민’으로서 공적 책임을 다하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사회적 투자’를 강화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그래야 기업의 이윤 추구와 시장의 공공성이 조화된 경제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기업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기업지배구조, 사외이사제도 등의 개혁과 공공조달 입찰 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지표 반영 등을 제시했다.  
▼ ④ 노블레스 오블리주, 선택 아닌 의무로 ▼

지난 한 해 동안 세월호 참사, 조현아 사태 등이 잇따라 터지면서 국민은 국가와 사회지도층의 무능·무책임이라는 상처에서 벗어날 틈이 없었다.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책임)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더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는 진단이 나왔다.

신중섭 강원대 교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부각되는 건 ‘노블레스’가 이른바 ‘진상짓’을 했을 때”라며 “그들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하고, 다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는 최소한의 덕(德)”이라고 말했다.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도 “공직자, 정치인 등 사회지도층도 공익이나 법적 규정을 무시하며 사적인 이익 추구를 앞세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통적인 ‘노블레스’의 의미를 확대하고 이들에게 강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은경 변호사는 “노블레스는 단순히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니라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이들의 도덕적 책임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의무’로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⑤ 입시보다 인성… 배려부터 가르치자 ▼

시민정신과 공공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은 결국 ‘교육’으로 모아졌다. 대학 입시만을 위주로 하는 현재의 학교교육과 가정교육을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는 세계가치관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한국은 자녀들이 가져야 할 중요한 자질로 ‘관용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을 꼽은 비율이 40.8%에 불과해 최상위권인 스웨덴(87.0%)과 큰 차이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초중등 교육에 공공성 강화 프로그램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승태 이화여대 교수는 “품위와 교양을 갖추는 것이 높은 신분의 상징이 되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독서클럽과 공공도서관을 확충해 토론과 독서문화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황경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공공성을 배우는 데서 더 나아가 익히고 체득시켜 공덕심(公德心)을 길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성원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야말로 가장 효과적인 사회교육 수단”이라고 말했다.

김성호 연세대 교수는 “파당적 사익추구와 명망가 중심으로 조직화된 사회운동 집단을 버리고 시민의 일상적 삶속으로 하방(下放)해 성찰적·훈육적 기능을 회복하는 시민사회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교육에 관해서는 2월 10일 4차 심포지엄에서 상세히 다룰 예정이다.

정임수 imsoo@donga.com·홍정수 기자
#레드카드#법치#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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