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오락가락 뉴타운… 동네만 흉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일 03시 00분


장위 12구역 ‘9년만의 해제’ 르포

1월 조합 인가가 취소돼 뉴타운 사업이 무산되며 주민 간 갈등을 겪고 있는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 12구역 전경.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1월 조합 인가가 취소돼 뉴타운 사업이 무산되며 주민 간 갈등을 겪고 있는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 12구역 전경.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뉴타운으로 지정해 달라고도, 취소해 달라고도 한 적이 없습니다. (서울시의) 오락가락 정책으로 동네만 흉흉해졌어요.”

지난달 26일 찾은 서울 성북구 장위뉴타운 12구역(장위동 231-233 일대 4만8514m² 규모) 주민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다세대·다가구주택이 빼곡했고 사이사이 낡은 단독주택이 있었다. 햇빛이 좋은 날씨였지만 인적은 드물었다. 10년간 뉴타운 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스산했다. 지나가는 주민에게 재개발 사업 이야기를 꺼내자 ‘휘휘’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돌렸다.

올해 1월 장위뉴타운 추진조합 설립 인가가 취소됐다. 이에 시공사는 조합이 빌려간 사업 추진비용 31억 원을 돌려받기 위해 조합 임원 7명의 재산에 가압류를 신청했다. 이에 조합 임원들이 다시 조합설립인가 취소 절차에 적극 가담했던 57명에게 구상권을 행사하기 위해 5300만 원씩 가압류를 신청했고 최근 법원이 이를 받아들였다.

○ 뉴타운 해제 이후 주민 갈등 폭발

2005년 지정된 장위뉴타운은 2008년 장위재정비촉진 계획이 결정, 고시되고 이듬해 조합이 설립되면서 사업이 순풍을 타는 듯했다. 그러나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사업은 지지부진해졌다. 2012년 1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곳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는 뉴타운 수습 전략을 발표했다. 실태를 조사한 뒤 주민들이 반대하면 뉴타운을 해제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었다.

찬반을 둘러싼 주민들 간 반목은 더욱 심해졌다. 땅값 보상금은 턱없이 적고, 분담금도 내기 어렵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반대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주민 571명 가운데 302명(52.8%)이 조합 해산에 찬성했다. 이제 집도 팔 수 있고, 이사도 갈 수 있게 됐으니 오랜 갈등이 해소될 줄 알았지만 매몰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처음에는 시가 매몰비용을 지원해 줄 것처럼 나서다가 이제 와서 이를 주민들한테 다 떠넘긴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당초 서울시는 매몰비용에 대해 ‘정부와 함께 지원 계획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울시가 올해 상반기 매몰비용을 지원한 곳은 단 2곳. 추진위 단계에서 해제된 지역에 한해 검증된 매몰비용의 70%인 2억여 원을 지원했다. 장위뉴타운처럼 설계를 맡기거나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 단계에서는 매몰비용이 훨씬 크지만 이런 곳을 지원하려는 계획은 없다.

○ 매몰비용 놓고 추가 갈등 우려

“재개발요? 그거 아주 잘못됐습니다. 동네 사람끼리 형님 동생 하고 지내다가도 원수가 됩디다. 이제라도 매몰비용만 청산된다면 재개발 얘기는 꺼내기도 싫습니다.”

장위 12구역 조합원 72%가 다가구·다세대주택에 산다. 서울에 올라와 집값 싼 곳을 찾아, 인근 개발지역에서 밀려나서 정착한 전형적인 서민 동네다. 무분별한 뉴타운 추진으로 인한 매몰비용을 떠안게 된 주민들이 서로에게 화살을 겨누며 마을은 파탄났다.

재개발조합은 “재개발 추진한다 해서 월급 받은 죄밖에 없다. 사업 무산의 책임을 묻겠다”며, 주민 비상대책위원회는 “60, 70대 노인을 대상으로 가압류를 신청한 것은 협박용이다. 무턱대고 개발을 추진한 조합의 비리를 밝혀내겠다”며 맞서고 있다. 서울시가 들었다 놔버린 재개발 현장엔 남은 주민의 고통이 계속되고 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장위뉴타운 12구역#뉴타운 해제#재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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