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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窓]“네살부터 한국서 컸는데 불법체류 굴레 못벗나요”

입력 2014-08-15 03:00업데이트 2021-05-0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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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사이트에 호소글 올린 파키스탄 출신 18세 소녀

공장 다니던 아버지 부상으로 중학교 중퇴하고 생활전선에
2008년 이후 불법체류 신분
법무부 “안타깝지만 특혜 안돼”
“저는 한국말밖에 못하는데 여기 미래 없으면 어떡해요”
“나이 먹고 철이 들어가면서 나와 우리 가족은 미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계속 숨어 살고 마음대로 일자리도 찾을 수 없는 환경에서 학교 공부에 집중한다는 것은 사치였습니다.”

파키스탄 출신의 18세 소녀 사라(가명)는 불법체류자다. 현재 경기 부천시에 살고 있는 사라의 부모와 4남매 모두 6년째 불법체류 상태다.

처음 한국에 온 사람은 사라의 아버지다. 1999년 파키스탄에서 버스 운전을 하던 아버지는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왔다. 하지만 한국에 온 지 반년 만에 공장에서 고관절을 다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어머니는 2000년 다친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당시 다섯 살, 네 살, 두 살인 세 자녀를 데리고 한국 땅을 밟았다. 둘째인 사라는 당시 네 살이었다.

아버지는 수술비가 없어 2004년이 되어서야 인근 교회 목사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후에도 제대로 걷지도, 힘을 쓰지도 못하는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사라는 중학교를 중퇴한 채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어렵게 여섯 가족의 생계는 이어 갔지만 문제는 비자였다. 2003년 아버지가 합법화된 E-9(비전문취업) 비자를 받고 2006년에 다시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로 체류 기간이 2008년 9월까지 연장됐다. 그러나 이후 사라 가족은 더이상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얻지 못했다.

아버지는 가족들을 데리고 파키스탄으로 돌아가려 수차례 결심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모아놓은 재산이 없을 뿐 아니라 파키스탄에 가도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의 미래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네 자녀 모두 한국을 고향처럼 여기며 한국어밖에 구사할 줄 몰랐다. 2007년 태어난 막내는 파키스탄 땅을 밟아본 적조차 없다.

집안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라는 묵묵히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모시고 막내 여동생의 교육과 집안 대소사를 도맡아 왔다. 간질 환자인 첫째 언니(19)를 돌보는 일도 사라의 몫이다. 한창 미래에 대한 꿈에 부풀 나이였지만 사라에게는 꿈이 없었다.

최근 사라에게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바로 남동생의 병원 치료비다. 올해 6월 고등학교 1학년인 셋째 남동생이 수업시간 중 축구를 하다 팔이 부러졌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었지만 학교 측은 전부 책임지겠다며 조속히 치료를 받게 했다. 하지만 100만 원 넘는 치료비가 청구되자 뒤늦게 치료비의 일부만 줄 수 있다고 말을 바꿨다.

절망의 끝에 선 사라는 이달 8일 청와대 자유게시판과 국민신문고에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를 올렸다. 바로 4남매에게 유일한 희망인 비자를 허락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법무부에까지 전달됐다. 법무부는 아동의 교육권 보호 차원에서 자녀들이 학교 교육을 받고 있는 동안 강제 출국 조치를 할 가능성은 적지만 불법체류 신분으로 있는 가족에게 비자를 재발급해 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남매의 사연이 안타깝지만 이런 유사 사례를 전부 다 받아줘 체류 자격을 주기는 정책적으로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사라의 바람은 소박하다. “단 하루라도 마음 편히 살아보고 싶어요. 우리가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이곳 한국에서요.”

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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