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행학습 말라는데 방학 보충수업 어쩌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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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규제법 시행 앞두고 일선고교 ‘눈치 작전’

일명 ‘선행학습금지법’(공교육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 시행을 앞두고 일선학교에서 여름방학 보충수업 범위를 놓고 혼선을 빚고 있다.

9월부터 시행되는 선행학습금지법은 정규 교과과정에 앞서는 수업을 하거나 시험문제를 내면 해당 교사와 학교에 불이익을 주는 것. 통상 일선 고교들은 관례적으로 여름방학 보충수업 때 2학기 수업 내용을 미리 가르쳐왔다. 방학 동안 미리 배우고 실제 학기에는 복습을 해야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특히 수학은 교과 진도대로 수업을 할 경우 고3 수험생들이 수능 직전에 기하와 벡터 등을 처음 배우게 돼 여름방학 동안 보충수업을 해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이 때문에 일선 학교들은 법을 지키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여름방학 선행학습을 중단하기도 어려운 난처한 처지에 빠졌다.

서울 소재 A 고교는 1학년 여름방학 보충수업을 위한 가정통신문에 ‘1학기 진도 복습 수업’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뒤로는 교사가 학부모에게 개별적으로 전화해 “1학기 복습이 아니라 2학기 진도를 미리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정통신문에 ‘2학기 선행학습을 위한 보충수업’이라 적으면 후에 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 양천구 목동의 B고교는 ‘수능 대비’ ‘모의고사 기출 특강’ 등 수업 범위를 알 수 없도록 보충수업 강의 제목을 두루뭉술하게 지었다. 이 학교 이모 교사는 “자체 제작한 프린트물로 수업을 진행한다고 공지하고, 실제로는 교사 재량으로 요령껏 선행학습 수업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C고교는 아예 선행학습 보충수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학교 오모 교사는 “보충수업 때 1학기 내용을 복습한다고 하자 소수의 학생만 수강을 신청했다”며 “징계가 걸린 사안이니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목동 D고교의 한 교사는 “법을 어기면서까지 선행학습을 할 생각은 없지만 학부모들의 요구가 커 다른 학교 상황을 고려해 판단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학교와 달리 학부모들은 학교가 방학 동안 선행학습을 하지 않을 경우 “결국 비싼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학교에서 하게 되면 학생들은 과목당 평균 6만∼7만 원만 수업비로 내면 된다. 하지만 학원에서 여름방학 특강을 들으면 과목당 4회 기준 25만 원 선이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에서 한 달 동안 수강하려면 약 60만 원이 든다.

고2 자녀를 둔 학부모 이지희 씨는 “학원보다 싼 가격에 미리 2학기 내용을 공부할 수 있는 보충수업을 법으로 막아 엉뚱하게 학원 잇속만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

안지혜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 영문학과 4학년
#선행학습#규제법#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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