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장 30개 넓이 ‘유병언 떠난 빈집’ 8시간 수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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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수사/檢, 금수원 진입]
허탕친 유병언 父子검거

오후 1시 ‘우리가 남이가!’ 검찰이 금수원에 들어간 뒤인 오후 1시경 정문에 ‘우리가 남이가’라는 현수막이 달려 있다. ‘우리가 남이가’는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이 1992년 법무부 장관 시절 부산 초원복집 모임을 했을 때 나온 발언이다. 안성=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오후 1시 ‘우리가 남이가!’ 검찰이 금수원에 들어간 뒤인 오후 1시경 정문에 ‘우리가 남이가’라는 현수막이 달려 있다. ‘우리가 남이가’는 김기춘 청와대비서실장이 1992년 법무부 장관 시절 부산 초원복집 모임을 했을 때 나온 발언이다. 안성=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검찰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 일가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나선 지 한 달여 만인 21일 기독교복음침례회(구원파)의 본산인 경기 안성시 금수원에 진입해 8시간 동안 수색을 벌였지만 유 전 회장과 장남 대균 씨(44) 부자를 찾지 못했다.

○ 수사 한 달 만에 ‘빈집’ 수색

오후 3시 시설 수색 오후 3시경 금수원에 들어간 검찰 수사관들이 검찰 로고가 찍힌 박스를 들고 폐전동차 인근을 수색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여덟 상자 분량의 서류 등을 압수했다. 안성=뉴스1
오후 3시 시설 수색 오후 3시경 금수원에 들어간 검찰 수사관들이 검찰 로고가 찍힌 박스를 들고 폐전동차 인근을 수색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여덟 상자 분량의 서류 등을 압수했다. 안성=뉴스1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김회종 2차장)은 이날 낮 12시경 금수원 정문을 열어준 신도들 사이로 수사관 70여 명을 투입했다. 정순신 특수부장은 이태종 기독교복음침례회 대변인에게 구인장과 영장을 보여준 뒤 “종교시설에 온 것을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만 법 집행을 위해 시설을 꼼꼼하게 살펴보겠다”고 말한 뒤 유 전 회장 부자의 신병 확보에 나섰다. 수사관들은 각 10명씩 6개조로 나뉘어 전체 규모가 46만 m²(축구장 30개 크기)인 금수원을 구석구석 수색했다. 각 조마다 3명씩 신도들이 붙어 안내 역할을 맡았다. 종교단지 내 대강당 2층의 유 전 회장 사진작업실 등에서는 여덟 상자 분량의 압수물을 확보했다. 대강당 정문을 비추는 폐쇄회로(CC)TV와 유 전 회장 별장으로 쓰였다는 건물 CCTV의 서버 본체도 압수했다. 하지만 유 전 회장 부자가 이미 금수원을 떠난 것으로 결론 내리고 오후 8시경 금수원에서 나왔다. 금수원 외곽을 이중으로 둘러싸고 외부인 출입을 막았던 경찰기동대 500여 명도 철수했다.

검찰은 유 전 회장이 대균 씨와 따로 떨어져 서울 등의 구원파 신도 집에 숨어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유 전 회장이 17일 토요예배를 전후해 금수원을 몰래 빠져나왔다는 첩보에 신빙성이 있다는 것. 유 전 회장은 또 최근까지 금수원 인근의 안성시 금광면 오흥리 전용 별장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이 별장의 CCTV, 휴대전화 발신지, 금수원을 빠져나갈 때 이용한 차량의 이동 경로 등을 분석해 유 전 회장을 추적할 계획이다. 또 신도들이 금수원 인근에 소유하고 있는 고급 전원주택들이 지하에 은신해도 불편이 없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 첩보에 따라 인근 주민과 공인중개사 등을 탐문하고 있다. 한 주민은 “이달 초 금수원 측이 서류를 신도들 집에 가져다 놓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전했다.

○ 구원파 “모세의 기적처럼 비켜주자”

오후 8시 ‘빈손’ 철수 오후 8시 5분 금수원 수색을 마치고 검찰 버스가 정문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유 전 회장과 장남 대균 씨를 검거하는 데는 실패했다. 안성=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오후 8시 ‘빈손’ 철수 오후 8시 5분 금수원 수색을 마치고 검찰 버스가 정문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유 전 회장과 장남 대균 씨를 검거하는 데는 실패했다. 안성=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구원파 측은 이날 오전 8시까지도 “우리가 오대양 집단 자살 사건과 무관하다는 것을 공식 확인해 달라”고 검찰에 요구하며 저항하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이태종 대변인은 오전 11시경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가 원했던 내용의 검찰 공문을 받았다”며 “유 전 회장 일가의 ‘인간 방패’라는 오해를 받으며 이어온 우리의 투쟁을 끝내고 검찰의 수색에 협조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변인은 그러면서도 “우리가 사랑하는 유병언 형제를 지키기 위해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회견 말미에는 “우리가 목소리를 높이고 일방적으로 얘기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사죄드린다”며 큰절을 했다.

신도들은 “검찰 차량이 들어오면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터주자”며 문을 열었다. 이를 두고 ‘구원파가 요구안이 관철돼 수색에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실제로는 유 전 회장이 금수원을 빠져나갈 때까지 시간을 번 뒤 농성을 해제한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왔다.

경찰과 소방 및 보건 당국은 금수원 주변에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경찰은 금수원 앞 1.6km 구간의 38호선 국도 편도 2차로 중 1개 차로의 차량 통행을 막고 인근에 경찰기동대 700여 명을 대기시켜 불상사에 대비했다. 경기재난의료지원팀은 금수원 인근에 천막을 설치하고 안성시 보건소 직원 48명과 구급차 27대를 투입해 긴급의료지원센터를 마련했다. 소방 당국도 소방차 8대와 소방관 21명을 대기시켰다.

유 전 회장 일가에 불만을 품은 시민들의 항의 방문도 끊이지 않았다. 오전 6시경 술에 취한 시민 추모 씨(49)는 자신을 제지하는 신도 이모 씨(52)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욕설을 퍼붓다가 경찰에 폭행 혐의로 입건됐다.

안성=곽도영 now@donga.com·조건희·김재형 기자
#유병언#세모그룹#금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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