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발명가 김영준 씨의 평생의 꿈인 ‘하이엔드 오디오의 대중화’가 긴 터널을 지나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낚시 자동차 오디오.’
아내가 가장 싫어하는 남편의 3대 취미다. 한 번 빠져들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렵고 많은 시간과 돈이 들기 때문이다. 오디오 발명가 김영준 씨(56·전북 김제시 금구면)는 이 가운데 2개에 빠져 있는 사람이다.
그의 평생 꿈인 ‘하이엔드(high end) 오디오의 대중화’가 이제 긴 터널을 지나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단계에 이르렀다. 하이엔드는 최고의 소재와 기술로 만들어 현장의 원음을 완벽에 가깝게 재생하는 최고급 오디오다.
○ 타고난 발명가
이리공고 전자과 2학년 때인 1975년 봄. 하숙집 전축으로 들은 음악은 그의 삶을 바꾸었다. 충격이었다. ‘소리의 신세계’였다. 그때 들은 음악은 비발디의 ‘사계’와 차이콥스키의 ‘1812년 서곡’. 그는 이틀간의 단식 투쟁 끝에 10여 마지기 농사를 근근이 짓는 어머니를 졸라 쌀 15가마의 빚을 얻어 직접 전축 제작에 나섰다. 서울 세운상가에서 부품을 구해다 통신강의록 책을 봐가며 독학으로 전축을 만들었다. 소리가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사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타고난 소년 발명가였다. 초등학교 시절 열 살 위인 형이 직접 광석라디오를 만들어 듣는 것이 신기해 자신도 전자자석을 만들었다. 중2 때는 중고 테스터기(전자부품 가동 여부와 전압을 체크하는 기기)를 구입해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고2 때는 전북지방기능올림픽 전자기기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타고난 기능인이기도 했다.
인하공전 전자과에 다니다 공군에 입대해서는 전공을 살려 항공전자대대에 근무했다. 비록 사병이었지만 일본으로 가야 고칠 수 있었던 전투기의 통신 측정장비를 회로도만 보고 고쳐내 한 달간의 특별 휴가를 받기도 했다.
제대 후 고향에서 전파사를 운영하기도 했고 수도권의 여러 전자회사를 다니며 유명 전자회사에서 녹음기 개발을 담당하기도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발명에 몰두했다. 그는 전기장치 없이 배터리로 사용 가능한 자동소변세척기와 배터리 무선 충전기, 누전 차단기 등 18개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1986년 미국 특허까지 받은 자동소변세척기도 10여 년 뒤에야 상용화됐다.
○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하자’
2009년 6년째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일생의 꿈인 오디오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자. 내가 갖고 있는 기술력으로 남과 다르게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
살림을 정리해 전주로 내려왔다. 원룸을 얻어 연구에 착수했다. 수입 없이 연구에 몰두한 지 4년, 그동안 모아 두었던 전 재산 4억 원이 거의 바닥났다. 지난해에는 집을 전주 인근 김제시 금구면으로 옮기고 마지막 힘을 쏟아 부었다. 올 2월 드디어 오디오 파워앰프 시제품 생산에 성공했다. 앰프는 미약한 음의 전기신호를 스피커를 구동할 수 있을 만큼 증폭하는 오디오의 핵심 기기다.
사람의 오감 가운데 청각은 가장 주관적 감각이다. 미각이나 시각은 어느 정도 보편성이 있지만 청각은 사람마다 선호도와 훈련 정도에 따라 차이가 크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궁극적 목표도 원음의 가장 가까운 상태로의 재생이지만 각자 소리의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 취향에 맞는 오디오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가 개발한 오디오의 핵심 기술은 케이블에서 오는 저항으로 발생하는 전기 신호의 손실을 음의 손실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역대와 음의 찌그러짐률(THD)을 선택할 수 있는 회로를 개발해 넣었다는 것이다. 1개의 앰프로 여러 개의 오디오를 장만한 효과를 낸 것이다. 기계가 낯선 기계치를 위해 앰프 전면에 조작 스위치도 모두 없애고 리모컨 하나로 모두 조작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었다.
3월 13일에는 전주에서 오디오 전문가와 마니아를 모아 놓고 청음회를 열었다. 오디오 동호인 모임인 온소리동호회 박영채 씨는 “실연에 가까운 음장감과 악기 간 소리가 섞이지 않고 가닥추림이 뛰어나 하이엔드로서 손색없는 실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오디오 마니아 오복출 씨(59)는 “디지털이지만 LP 느낌의 따뜻하고 자연스러운 소리가 놀랍다”며 “앞으로도 기술적 진보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5월에는 서울에서 기술설명회와 청음회를 열고 이후 수요자를 모집해 한정판으로 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현재 생각하는 가격은 프리엠프와 파워엠프 2조, 컨트롤러를 합해 600만 원 선. 물론 스피커와 플레이어는 제외한 값이다. 명품 하이엔드 오디오 가격은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이르는 고가다. 그의 평생의 꿈인 ‘하이엔드 오디오의 대중화’를 위해 저가형 하이엔드 개발에도 더 진력할 계획이다. 그는 “오케스트라 전체 악기를 로봇이 연주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악보를 로봇에 입력하면 원음으로 완벽하게 재생해 작곡가나 연주가들이 곧바로 수정하거나 연습에 참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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