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은 자유의지… 담배 제조-설계 결함 아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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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15년 끈 ‘담배소송’ 폐암환자-가족 패소 확정
“폐암, 흡연만으로 생기진 않아 KT&G에 배상책임 못 물어”
원고측 “생명 경시한 판결”… 건보공단 “그래도 소송 강행”

흡연으로 폐암이 발병했다며 담배 제조사인 KT&G를 상대로 제기한 ‘담배소송’에서 15년 만에 흡연자 측의 패소가 확정됐다. 대법원 2부(주심 신영철 대법관)는 10일 김모 씨 등 폐암 환자와 가족 등 30명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2건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 대법원 “흡연은 개인의 선택 문제”

대법원 판결의 취지는 흡연 때문에 폐암에 걸렸다는 인과관계의 성립 여부와 상관없이 KT&G가 제조한 담배에 하자가 없어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우선 소세포암과 편평세포암 환자 4명(3명은 사망)의 경우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폐암과 흡연의 역학적·개별적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비소세포암과 세기관지 폐포세포암으로 사망한 3명에 대해선 역학적 인과관계는 인정했지만 개별적 인과관계는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들 폐암은 흡연으로만 생기는 특이성 질환이 아니고, 흡연과의 관련성이 낮다는 게 의학계의 평가”라고 밝혔다.

역학적 인과관계는 폐암과 흡연 사이의 통계적 연관성이고 개별적 인과관계는 외부적 환경요인 외에 나이와 가족력 면역체계 등 개인적 특성을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대법원은 인과관계가 성립한다 해도 KT&G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봤다. KT&G가 만든 담배에 설계·표시상 결함이 있다고 보기 어려워서다. 재판부는 “흡연자는 안정감 등 니코틴의 약리 효과를 원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KT&G가 니코틴이나 타르를 완전히 제거하는 방법을 쓰지 않은 것을 결함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KT&G가 법률 규정에 따라 담뱃갑에 경고 문구를 기재하는 것 외에 추가 설명이나 경고 표시를 하지 않았다는 원고 측 주장에 대해서는 “언론 보도와 법적 규제 등을 통해 흡연이 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게 사회 전반에 인식돼 있으므로 결함이 인정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흡연이 ‘개인의 선택 문제’여서 제조사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판단도 내놨다. “흡연으로 니코틴 의존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해도 흡연을 시작하고 계속할지는 개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패소가 확정된 흡연자 측은 “생명을 중시하지 않는 판결이다. 담배 피해에 대한 사법적·입법적 입증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선고는 국내에서 제기된 담배소송 4건 중 첫 대법원 상고심이었다. 4건 가운데 흡연자가 승소한 사례는 없었다. 1건은 항소 포기로 원고 패소가 확정됐고, 1건은 서울고법에서 재판이 진행 중이다.

○ 건보공단 “예정대로 소송 내겠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이날 대법원 판결과는 무관하게 예정대로 다음 주 흡연 피해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소장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공단 법무지원실 안선영 변호사는 “대법원이 흡연과 소세포암, 편평세포암의 인과관계를 인정한 서울고법의 판단을 그대로 수용한 게 이번 판결의 핵심”이라며 “공단이 축적한 빅데이터를 활용하면 향후 소송에서는 결과가 뒤집힐 가능성이 더 크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승소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소송 액수를 최소 규모인 537억 원으로 잠정 결정했다. 소송 경과를 보고 액수를 점차 늘려나갈 계획이다. 소송 대상은 KT&G를 비롯한 외국 담배업체 3개사(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JT인터내셔널코리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김병철 한국담배협회장은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난 사안에 대해 재차 소송을 한다는 건 엄청난 국가 재원, 인력, 시간 낭비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최예나 yena@donga.com·이철호 기자
#흡연#폐암#담배 소송#KT&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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