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동초제 이수자인 김규형 씨(왼쪽)가 지난달 28일 창작 소리극 ‘뉴욕스토리’ 리허설에서 익살스러운 고수 역할을 선보이고 있다. 김 씨는 판소리가 대중에게 더 다가설 수 있도록 연극화에 힘쓰고 있다. 인천 남동문화예술회관 제공
“그놈의 영주권. 미국 영주권 갖고 있는 여자와 가짜결혼을 한다고!” “한국 사람들은 어디에서라도 예수님 사인을 다 받아온다고 하던데.”
3월 28일 인천 남동문화예술회관 3층 소공연장 ‘스튜디오 제비’에선 창작 소리극 ‘뉴욕 스토리’의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판소리와 연극을 결합한 이 소리극은 3∼12일 남동문예회관 무대에 올려진다.
‘뉴욕스토리’의 등장인물은 열댓 명인데 리허설에 나온 사람은 달랑 3명뿐이었다. 알고 보니 3명이 1인 다역을 맡고 있었다.
이번 공연에서 모둠북 명인 김규형 씨(55)는 고수, 소녀 같은 유리 언니, 소식 끊긴 남편, 모둠북 광대, 해설 등 1인 5역을 맡았다. 그는 음높이가 다른 여러 북을 모아 연주하는 모둠북을 창시했고,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동초제 이수자이다. 국립국악관현악단 타악수석 및 악장을 지냈다.
김 씨는 이날 대사 중간에 “제대로 까여 볼래” 등 사투리나 속어를 섞은 애드리브를 가끔 넣어 스태프 사이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연출자인 박은희 남동문화예술회관 관장은 김 씨에게 “왜 그런 대사를 넣냐”고 지적하면서도 웃음을 지었다.
김 씨는 3월 22일 미국 뉴욕 퀸스칼리지콜든센터에서 ‘아리랑, 미국의 심장을 두드리다’라는 공연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27일부터 남동문예회관 리허설 무대에 다시 합류했다. 뉴욕 무대에는 경기민요 중요무형문화재 이춘희, 대금 명인 원장현, 명무 박영미, 가야금병창 위희경 씨 등 국내 대표 명인이 총출동해 미국 음악가들과 합동 공연을 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관람했다.
김 씨는 뉴욕스토리에 대해 “판소리의 음악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연극의 묘미를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은 뉴욕의 한 네일 살롱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미국으로 떠난 뒤 소식이 끊긴 남편을 찾기 위해 단체 관광객에 섞여 뉴욕에 왔다 불법 체류하게 된 충청도 아줌마 등 한국 여인들의 애환을 코믹하게 들려준다.
김 씨는 ‘뉴욕스토리’에서 재미를 선사하는 중심 역할을 한다. 박 관장은 “‘판소리가 연극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김 씨의 실험정신이 녹아 있는 작품”이라며 “단조로운 역할에 그쳐온 고수의 대변신이 눈에 확 들어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의 부친 동초 김연수 선생(1907∼1974)은 구전으로 전해오던 춘향가 흥부가 등 판소리 5바탕 가사를 정리했고 현대 판소리의 양대 산맥인 동초제(東超制)를 완성한 인물이다. 김 씨는 “고수의 역할을 확장해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연구 실험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씨와 함께 호흡을 맞출 2명의 여성은 전국국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김선미 씨와 창작 뮤지컬 ‘삼거리 연가’의 주연 최예림 씨로 각각 1인 3∼6역을 맡는다.
뉴욕스토리 공연은 월 목 금요일 오후 7시 반, 화 수요일 오후 3시, 토 일요일 오후 4시 등 하루 한 차례 이뤄진다. 관람료는 성인 2만 원, 청소년 1만 원. 032-453-5710, www.inter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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