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륭전자 女노조원, 경찰 상대로 손배소… 서울중앙지법 “대법 판단에 문제 있어”
위증만 인정… 200만원 위자료 판결
대법원이 형사재판에서 “성희롱 개연성이 높다”고 판단한 사안에 대해 하급 법원인 민사재판부가 “성희롱이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이례적 판결이 내려졌다. 형사사건 판결에서 대법원이 확정판결한 사안은 민사사건에서도 존중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민사재판부는 사건 당사자 진술 등 증거를 종합해 볼 때 대법원의 사실 인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6단독 심창섭 판사는 17일 기륭전자 여성 노조원이 경찰관을 상대로 ‘성희롱을 당했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성희롱을 인정할 수 없어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2010년 4월 파업 집회에 참석했다 서울 동작경찰서에 연행된 기륭전자 노조원 박모 씨(51·여)는 회사 직원을 폭행한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경찰관 김모 씨(45)가 자신을 성희롱했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경찰서 형사과 사무실 안에 설치된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고 있었는데 김 씨가 강제로 문을 열어 성적 수치심을 느꼈고, 이 때문에 손발이 마비돼 응급실에 실려갔다며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박 씨의 폭로는 당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과 비교될 만큼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경찰관 김 씨는 “화장실 안에서 통화를 하고 있던 박 씨에게 나오라고 말한 것뿐이지 강제로 문을 열어 몸을 쳐다본 적은 없다”고 반박하고 박 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이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박 씨는 1년 6개월 동안 법정공방을 벌인 끝에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박 씨가 실제로 용변을 보던 도중 김 씨가 문을 열었을 개연성이 큰 것으로 보이고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던 도중 문을 열었다면 그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될 것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박 씨는 대법원에서 무죄를 받은 것을 바탕으로 지난해 9월 김 씨를 상대로 성희롱과 무고, 위증을 해 피해를 봤다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그러나 심 판사는 “박 씨가 사건 당시 화장실 문을 완전히 닫아두지 않았고 용변을 보는 대신 옷을 입은 채 통화를 하고 있었을 수 있다”며 “박 씨가 경찰에 적개심을 품고 거짓 항의를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혀 대법원의 판단을 뒤집었다. 심 판사는 “박 씨가 옷을 입은 채 전화를 하고 있던 상태에서 남성 경찰관이 무엇을 하는지 확인하려고 문을 약간 더 열었다고 해도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심 판사는 김 씨가 형사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화장실 문에 손을 대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은 위증으로 인정해 박 씨에게 위자료 2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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