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전교 1등부터 100등까지 대기업 취업에 ‘올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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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 학생들은 요즘 주요 대기업과 공기업에 합격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지난 몇 년간 대기업과 공기업 등이 고졸채용을 늘리면서 특성화고 학생들의 눈높이는 크게 높아졌지만 실제로 대기업에 합격할 수 있는 학생은 평균적으로 지원자 100명 중 서너 명 수준. 공기업에 취업하는 학생은 한 학교 당 한두 명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주로 1학기에 집중된 대기업, 공기업 고졸채용에 ‘다 걸기(올인)’했다가 불합격한 특성화고 학생들 중 상당수가 진로를 놓고 고민에 빠지는 시기.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인문계열 학생들이 성적에 맞춰 대학에 진학할지, 재수할지를 고민하듯 특성화고 학생들도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인천지역 특성화고 3학년 K 군(18)과 전남지역 특성화고 3학년 M 군(18), 그리고 4년째 특성화고 3학년 학생들의 취업 지도를 맡고 있는 경기지역 특성화고 Y 교사(43·여)의 고민을 들여다봤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각각 들은 뒤 대화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K 군=3년간 학교에서 내신 성적 상위 20% 정도를 유지하며 열심히 공부했어요. 지난 1학기에 대기업인 S그룹 한 곳에만 지원했다가 불합격한 뒤 매일 허송세월 하고 있어요. S그룹에 꼭 가고 싶었는데…. 이제 중소기업에 지원하거나 대학에 진학하는 방법밖에 없는데, 모두 끌리지 않아 고민이에요.

M 군=저는 올해 1학기 때 공기업 6곳과 대기업 1곳에 지원했다가 모두 불합격했어요. 공기업 취업을 위해 고2 때 전교회장을 하고 각종 공모전에도 참여하면서 노력했지만 결과는 좋지 못했죠. 공기업과 대기업 합격자는 전교에서 10명이 채 안 됐어요. 30명이 안 되는 저희 반 학생 중 8명은 ‘차라리 대학에 가겠다’며 대입을 준비하고 있죠.

Y 교사=적은 수의 자리를 놓고 많은 학생이 경쟁하니 취업이 어려울 수밖에 없지. 우리 반 학생 36명 중 21명이 S그룹에 지원했는데 합격자는 1명이었지.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도 중소기업엔 취업하지 않겠다고 하더구나.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에 취업해 실력을 쌓으면 자기 분야에서 ‘실력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 텐데 말이야.

M 군=선배들은 특성화고를 졸업하면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저희는 대기업과 공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뒤 보수나 복지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비교우위가 있는 대기업과 공기업에 마음을 뺏길 수밖에 없어요.

K 군=요즘 중소기업으로 현장실습을 다니는 친구들 중 일부는 ‘웬만하면 대기업에 가거나 대학에 진학하라’고 말하기도 해요. 일부 중소기업은 근무자의 안전을 지켜주는 시설 여건이 부실해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또 중소기업 관계자가 말하는 것과 달리 학력에 따라 보수나 승진에 차별이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전하는 친구도 있고요.

Y 교사=당장의 급여조건이나 복리후생도 중요하지만 특성화고생의 비전은 기술전문인이 되는 것이잖아. 직장에서 전문기술을 계속 쌓을 수 있을지를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중소기업은 짧은 기간 안에 다양한 파트를 돌며 각종 전문기술을 배울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점에서 해당 분야의 최고전문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장점도 있어.

K 군=선생님 말씀도 일부 공감해요. 중소기업은 아직 일자리의 여유가 있어서 취업 자체가 어렵지는 않아요. 생산라인에서 조립이나 용접 등 단순한 작업을 하는 일자리는 근로자를 상시 채용하는 곳도 많죠. 하지만 일부 전공분야는 실력을 키울 만한 경쟁력 있는 회사를 찾기가 쉽지 않아요. 저도 학교에서 전공으로 배운 기계공학 기술을 활용해 일할 수 있는 중소기업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실패했어요. 주요 취업사이트에 채용공고를 낸 중소기업 10곳에 지원서를 냈지만 결국 면접을 볼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어요. 제 진로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이강훈 기자 ygh8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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