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영도다리 47년만에 다시 올라간다… 11월 개통 예정

  • 동아일보

許시장 “옛 개통일인 11월 23일 생각”
공사 끝나면 1일 1회 상판 도개하기로

79년 전 개통됐고, 47년 전 도개 기능이 멈춘 영도다리의 옛 기능이 되살아났다. 9일 첫 공식 시연회가 열리자 부산 시민들은 외국의 유명 교량처럼 ‘영도 브리지’가 될 것 이라며 기대에 부풀었다.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79년 전 개통됐고, 47년 전 도개 기능이 멈춘 영도다리의 옛 기능이 되살아났다. 9일 첫 공식 시연회가 열리자 부산 시민들은 외국의 유명 교량처럼 ‘영도 브리지’가 될 것 이라며 기대에 부풀었다. 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50여 년 전 영도다리가 들릴 때면 발 디딜 틈이 없었지. 참 많은 사람이 모였어. 영도다리가 멈추고 시청도 이전하면서 그 많던 점집도 다 떠나고 이제 겨우 세 집만 남았네.”

52년째 영도다리 옆에서 점집을 하고 있는 배남식 할머니(82)는 “오래 살다 보니 좋은 일이 생겼다”며 감회에 젖었다. 9일 중구 중앙동 옛 부산시청 근처 건물 옥상. 47년 만에 영도다리를 도개교(跳開橋)로 바꾼 뒤 다리 상판을 들어올리는 첫 공식 시연회가 열리자 다리 주변 시민들의 기분도 덩달아 들떠 있었다.

6·25전쟁 이후 영도다리 주변에는 70여 개의 점집이 성업했다. 가짜 점쟁이도 색안경을 쓰고 한몫을 챙길 정도였다. 헤어진 가족, 전쟁에 나가 소식이 없는 아들,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친구의 소식을 묻는 피란민들의 간절함을 노린 상술이었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승달만 외로이 떴네…’라는 ‘굳세어라 금순아’(강사랑 작사, 박시춘 작곡)의 가사처럼 피란민들이 망향의 그리움을 달래던 곳이기도 했다. 고향을 등진 뒤 생활고에 시달리던 피란민들이 이곳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이 자주 생기자 ‘잠깐만’이란 표지판을 난간 곳곳에 붙이기도 했다. 1966년 다리가 들리는 도개 기능을 없앤 뒤 ‘영욕의 역사’도 멈췄다.

영도다리가 다시 하늘로 치솟을 날이 머지않았다. 시민들은 영국의 ‘타워 브리지’, 호주의 ‘하버 브리지’, 미국의 ‘골든 브리지’처럼 명물 ‘영도 브리지’를 기대하고 있다.

영도다리는 부산 중구 남포동과 영도구 대교동을 잇는 국내 유일의 도개교이자 최초의 연륙교다. 1934년 11월 23일 일제강점기 때 길이 214.7m, 너비 18.3m(왕복 4차로)로 개통됐다. 영도다리에는 조선업이 발달한 영도를 교두보로 대륙을 침략하려던 일본 군국주의 음모가 깔려 있었다. 1932년 착공부터 완공 때까지 한국인 노무자 17명이 숨지고 41명이 중상을 입어 ‘유령의 다리’로 불리기도 했다. 도개 부분 31.3m가 들리면 1000t급 배가 지나갔다. 한 번 들고 내리는 데 20분 정도 걸렸다. 하루 일곱 번 이런 장면이 연출됐다. 영도다리 인근 옛 부산시청 자리에 부산 제2롯데월드를 짓기로 하면서 2009년부터 복원공사가 추진됐다. 롯데쇼핑㈜이 시에 기부하기로 하고 1000억 원을 들였다. 다리는 왕복 6차로로 폭이 늘었고 도개 방식은 똑같다. 기계 성능이 좋아져 도개 각도는 75도에 이르고, 다리를 들어올렸다가 다시 내리는 데 4분밖에 안 걸린다. 이날 허남식 부산시장은 “다리를 들어올리는 도개는 하루 한 번씩(시간은 미정)으로 하겠다. 개통식은 79년 전 개통했던 11월 23일을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영도다리#공식 시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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