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출현하지 않은 그 옛날, 지구의 검은 끝자락에서 가늠하기 어려운 에너지가 바다를 뚫고 올라온다 차가운 바다는 뜨거운 그것이 못마땅하여 절대자도 막을 수 없는 길고 긴 싸움을 펼친다. 생명을 용납하지 않을 것 같던 둘의 싸움도 시간이 지나자 풀과 꽃과 나비가 찾아오고 다시 수만 년이 흐른 지금 과거의 혼돈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산을 오르고 있다.
한라산과 동시에 생긴 기생화산. 산의 제주 방언으로 이들을 ‘오름’이라고 한다.
다랑쉬오름, 아부오름, 용눈이오름, 새별오름, 높은오름... 386개의 오름들은 수만 년 전 기세 넘치는 붉은 에너지에서 이제는 초록색 완만한 능선으로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오름에 올라서면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이고 수많은 이웃 오름들이 보인다. 또다시 이웃 오름에 올라서면 조금 전 올라왔던 오름이 보이고 또 다른 오름이 보인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나 보다. 정상에 올라오니 새로운 정상이 보이고 그곳을 가려 하니 다시 내려와야 한다. 인간보다 몇만 겹이나 혼돈과 안정의 격동을 겪은 오름들은 과거를 숨긴 채 사람들에게 손짓을 한다. 태양과 바람도 손짓의 유혹을 거들어 준다. 어서 올라와 보라고…. 오늘도 연인과 가족과, 때론 혼자 오름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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