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억 위조수표 주범 나경술 검거… 사건 재구성 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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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자 100억 수표 빌려 번호 베껴… 2개 계좌 50억씩 이체후 외화로 인출

사기 등 전과 20범의 나경술 씨(51)는 지난해 8월 47억 원짜리 백지어음 위조 사건에 가담해 목돈을 챙긴 뒤 새로운 사기 수법에 눈을 떴다. 나 씨는 어음이 가능하면 수표도 백지로 받아 위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씨는 지난해 10월 ‘100억 원 위조수표 사기범행’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먼저 교도소 동기 김모 씨(46)를 끌어들인 뒤 바지사장으로 내세울 최모 씨(61), 자금조달책인 사채업자 김모 씨(42), 은행알선책, 환전인출책 등을 차례로 모집했다. 이들을 통해 은행 직원도 매수해 뒀다.

나 씨는 올해 1월 11일 국민은행 한강로지점의 김모 차장(42)으로부터 1억110만 원짜리 수표를 발행받았다. 이 수표는 일련번호는 있었지만 금액은 적혀 있지 않은 백지수표였다. 1억110만 원은 자금조달책 김 씨가 제공했다.

나 씨는 100억 원의 수표를 발행할 능력이 있는 사채업자를 물색해 박모 씨(45)를 점찍었다. 바지사장 최 씨가 박 씨에게 접근해 지난달 11일 국민은행 동역삼지점에서 100억 원짜리 수표를 발행토록 했다. 박 씨에게는 ‘회사 인수를 위해 잔고증명을 통해 자금력을 증명해야 한다’며 4일간만 쓰자고 했다. 1일 수수료 1800만 원씩 7200만 원을 선지급했다.

같은 날 오후 9시경 1억110만 원 백지수표와 100억 원 수표 사본을 평소 알고 지내던 위조 기술자에게 퀵서비스로 보냈다. 위조 기술자는 1억100만 원 수표의 일련번호를 날카로운 도구를 이용해 감쪽같이 지우고 100억 원 수표 사본의 일련번호를 덧씌웠다. 나머지 비워 있던 금액란에는 ‘₩10,000,000,000 ※일백억원 이하’를 컬러 프린터를 이용해 새겨 넣었다.

위조 수표를 받은 나 씨는 곧바로 인출에 나섰다. 12일 오전 11시 국민은행 수원 정자동지점에 최 씨를 보냈다. 이 지점의 한 간부는 평소 알고 지내던 사채업자로부터 ‘큰손이 찾아갈 텐데 자금 유치에 도움이 될 테니 잘해주라’는 얘기를 듣고 최 씨를 만났다. 최 씨가 가지고 온 100억 원 수표를 수표감별기를 통해 판독하자 원본으로 나왔다. 정자동지점은 최 씨가 제시한 페이퍼컴퍼니 회사 2개 계좌에 50억 원씩 이체했다. 나 씨는 준비해둔 환전책을 동원해 서울 명동 일대 3개 시중은행에서 달러와 엔화 등 97억 원을 외화로 인출하고, 나머지 3억 원은 현금으로 받았다. 14일까지 사흘 동안 명동 사채시장에서 외화를 모두 현금으로 바꿨다. 100억 원 중 나 씨 18억 원, 자금조달책 김 씨 33억 원, 바지사장 최 씨 3억 원, 환전책 7억 원 등으로 나눠 가졌다.

그러나 100억 원 수표 주인 박 씨가 14일 경찰에 신고한 뒤 범행은 한 달 만에 덜미를 잡혔다. 경기지방경찰청 전담수사팀은 사건 관련자 14명을 검거해 나 씨 등 4명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하고 2명은 이미 구속했으며 8명은 입건했다. 수표 위조 기술자 등 공범 11명도 뒤쫓고 있다. 경찰은 현재 3억6000만 원만 회수한 상태다.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위조수표#사건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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