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부러뜨려 산재보험금 20억 ‘꿀꺽’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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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돌며 노숙인-일용직 21명 유인, 고의로 사고낸 뒤 5년간 돈 가로채

김모 씨(60)는 사업에 실패한 뒤 대구 북구 칠성동 대구역 주변에서 노숙인으로 생활하던 2010년 1월 30일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며칠 전부터 밥과 술을 사주며 접근한 이모 씨(70)가 “마취하고 손가락을 부러뜨리면 아프지 않고 큰돈을 만질 수 있다. 다친 손가락은 수술받으면 정상으로 돌아온다”며 꼬드긴 것.

노숙 생활에 지친 김 씨는 이 씨를 따라가 경남 밀양시의 한 상가 신축 공사장에 취업했다. 이틀 후 그는 이 씨와 일당 3명 앞에서 자신의 왼손을 내밀었다. 이 씨는 김 씨의 새끼손가락을 뺀 나머지 손가락을 주사기로 마취한 뒤 쇠망치로 내리쳐 부러뜨렸다. 손가락 4개나 5개나 보상에 차이가 없어 4개를 선택했다. 나머지 일당은 “김 씨가 공사장 계단에서 넘어져 손가락을 다쳤다”며 현장 조사 나온 근로복지공단 직원에게 거짓 증언을 해줬다. 그리고 두 달 뒤에 김 씨에게는 산업재해 보험금 5700여만 원이 지급됐지만 김 씨가 받은 돈은 900만 원뿐이었다. 나머지 4800여 만 원은 보험금 수령 통장을 보관하던 이 씨가 챙겼다.

이렇게 고의로 손가락을 부러뜨린 후 산재로 가장해 보험금 수십억 원을 가로챈 일당과 범행 가담자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대구지검 서부지청은 8일 산재 보상보험법 위반 혐의로 이 씨 등 20명을 구속 기소하고 김모 씨(66) 등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달아난 차모 씨(46) 등 3명을 수배했다.

주범 이 씨 등 4명은 2008년 4월부터 최근까지 대구와 경북 경산 구미에서 일용직 근로자나 노숙인 21명에게 접근해 범행에 가담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 일당이 손가락을 부러뜨려 챙긴 보험금은 무려 20여억 원에 이른다. 이들은 근로복지공단과 손해보험사로부터 한 번에 5000만∼1억3000만 원씩을 가로챈 것으로 드러났다. 범행 가담자들에게는 원래 보험금이 900만∼3000만 원이라고 속이고 나머지는 자신들이 나눠 가졌다.

검찰 조사 결과 이들은 손가락을 쉽게 부러뜨리기 위해 기계틀을 만들고 불법 유통되는 동물 마취제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가담자 중에는 왼손 손가락이 불편해 일을 못 하게 돼 생활이 어려워지자 오른손 손가락마저 부러뜨리는가 하면 빚 800만 원을 갚으려고 손가락을 골절시킨 경우도 있었다. 모두들 나중에 정상인처럼 손을 쓸 수 있다는 말을 믿고 범행에 가담했지만 현재 대부분이 손가락을 제대로 구부리지 못하거나 주먹을 쥘 수 없는 등 후유증을 앓고 있다.

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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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재보험금#고의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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