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빔 붕괴, 70cm볼트 박을 곳에 5.5cm만… 사람 잡은 ‘날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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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명 사상 광주 H빔 붕괴 조사해보니

5월 30일 근로자 1명이 숨진 광주 북구 양산동 L사 물류센터 신축공사 현장. 기둥 역할을 하는 H빔 3개가 기울어져 있다. 설계도면에는 70cm 나사를 쓰도록 돼 있지만 실제론 5.5cm 나사가 박혀 있었고, 땅속에는 빔을 지탱할 철근도 없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5월 30일 근로자 1명이 숨진 광주 북구 양산동 L사 물류센터 신축공사 현장. 기둥 역할을 하는 H빔 3개가 기울어져 있다. 설계도면에는 70cm 나사를 쓰도록 돼 있지만 실제론 5.5cm 나사가 박혀 있었고, 땅속에는 빔을 지탱할 철근도 없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5월 광주의 한 대기업 물류창고 신축공사 현장에서 H빔이 무너져 근로자 1명이 사망하고 1명이 부상한 사건 현장을 확인한 결과 H빔 기둥을 지탱하는 땅속 볼트(나사)가 도면이 규정한 길이의 10분의 1가량에 불과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불감증에 의한 인재(人災)였던 것이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대기업 L사 물류센터 물류창고 신축공사를 하면서 설계도면대로 시공을 하지 않아 근로자 2명이 사상 피해를 입게 한 혐의(업무상 과실치사)로 D건설 현장소장 전모 씨(55) 등 3명을 조사 중이라고 30일 밝혔다. D건설은 이 공사에 재하청 업체로 참가해 기둥 설치를 담당했다.

경찰에 따르면 전 씨 등은 5월 30일 오전 10시 북구 양산동 물류창고(3000m²) 신축공사장에서 14m 높이 기둥 10여 개의 설치 공사를 하면서 기둥 3개가 기울어 바닥이 무너지는 바람에 근로자 최모 씨(46)가 추락해 숨지고 장모 씨(30)를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설계도면에는 물류창고 기둥 한 개마다 기둥을 고정하는 볼트 4개씩을 땅속으로 70cm를 박도록 돼 있지만 실제로는 5.5cm밖에 박혀 있지 않은 것을 확인했다. 기둥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볼트를 깊게 박고 땅속 볼트 주변에 철근을 가로세로로 촘촘하게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볼트가 얕게 박힌 데다 땅속에는 철근이 아예 설치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비용과 공사기간을 줄이기 위해 부실시공을 했다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사고 직후 다른 기둥들이 잇따라 무너질 위기에 놓이자 근로자들이 추가 붕괴를 막기 위해 기둥 1개를 강철 줄로 묶어 붙잡고 있는 아찔한 상황까지 벌어졌다. 건설사 관계자는 경찰 조사에서 “기둥을 고정하는 볼트를 깊이 박지 않는 바람에 사고가 난 것 같다”며 “하지만 건물이 완공되면 좌우로 철골 구조물이 연결되기 때문에 나사를 설계도면대로 설치하지 않는다 해도 실제 건물은 무너지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고정 볼트가 얕게 박힌 채 완공된 창고는 평상시에는 좌우 철골 구조물 덕분에 버틸 수 있지만 태풍이나 폭우가 몰아칠 경우 무너질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광주지방노동청은 기둥 고정 볼트를 설계도면대로 박고 안전망을 설치하도록 지시한 뒤 지난달 8일 공사 재개를 허가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H빔#부실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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