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 “버스 빨리내려” 폭행… 치매노인에 “무릎 꿇어” 막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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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자 보호, 갈길 먼 대한민국

노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짓밟는 몰상식한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시내버스에서 늦게 내린다는 이유로 여성 장애인을 폭행하는가 하면, 노인복지시설에 봉사활동을 하러 간 고교생들이 치매 노인에게 막말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먼 게 2013년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2일 오전 7시 48분 광주 북구 운암2동 한 사거리 정류장에 정차한 95번 시내버스. 지체장애 2급(뇌병변)인 최모 씨(58·여)가 승객 80여 명이 탄 만원버스에서 내리려고 했다. 아홉 정거장 전에 승차한 최 씨는 나중에 탄 승객들에게 밀려 버스 중간에 끼인 신세가 됐다. 내릴 준비를 하기 위해 뒷문 쪽으로 미리 이동하려 했지만 가득 찬 사람들 때문에 쉽게 가지 못했다. 마침내 내려야 할 정거장이 됐지만 불편한 몸으로 승객 사이를 헤치고 가기가 쉽지 않았다.

버스 운전사가 최 씨가 내릴 수 있도록 정차해 있는 상태에서 버스 출발이 지연되는 데 불만을 품은 것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하차 문 주변에 가까스로 도착한 최 씨에게 욕설로 추정되는 큰 소리를 쳤다. 이어 손으로 최 씨의 얼굴을 때리고 발로 허벅지를 네 차례 걷어찼다. 최 씨는 저항도 못한 채 “늦게 내려 미안하다. 때리지 마라”고 호소한 뒤 간신히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는 정거장에 2분가량 정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버스에서 내린 뒤 광주 북구 한 장애인시설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최 씨의 얼굴과 허벅지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최 씨는 광주 북부경찰서에 자신을 때린 남성 승객을 찾아 처벌해 달라며 의사 소견서를 냈다.

경찰은 문제의 시내버스를 찾았지만 사건 당일 고장 난 차량 대신 투입된 임시차량이어서 내부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았다. 시내버스 운전사는 경찰에서 “최 씨가 내릴 때 시끄러운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폭행하는 건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폭행 용의자를 잡기 위해 목격자를 찾는 전단을 배포했다. 전단을 본 주부 A 씨(43)는 경찰에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안경을 쓴 남성이 문 옆에 서 있다가 최 씨에게 큰 소리를 치며 발로 걷어차자 주변 승객들이 제지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은 폭력을 휘두른 남성의 신원을 파악하기 위해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27일 오전 전남 순천의 B노인복지시설 305호 병실에서는 고교생의 막말 사건이 벌어졌다.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돼 닷새간의 봉사활동 처분을 받고 이날 처음으로 복지시설을 찾은 고교 2학년생 장모 군(17)은 치매를 앓아 병상에 누워있는 류모 할머니(89)에게 “(무릎을) 꿇어라. 이게 너의 눈높이다”라고 외쳤다. 장 군의 막말에 치매 환자인 류 할머니는 손을 저으며 연신 “아이 창피해”라고 했다.

장 군은 박모 할머니(73)에게도 “여봐라. 네 이놈. 당장 일어나지 못할까”라고 고함을 쳤다. 치매를 앓고 있는 박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태였다. 봉사활동 처분을 받고 함께 온 친구 김모 군(17)은 키득키득 웃으며 장 군이 막말하는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당시 병실에는 막말 고교생 2명과 치매 할머니 2명뿐이었다. 철부지 고교생들의 일탈을 제지할 인솔교사나 간병인, 학부모는 병실에 없었다. 김 군은 이날 오후 5시경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신들의 봉사활동을 주변에 자랑하기 위해 동영상을 올렸다.

이들은 27일 밤 학교 조사에서 “할머니들이 웃고 좋아해서 장난을 친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학교를 찾은 학부모들이 교무실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했다”며 용서를 빌자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느끼며 죄를 뉘우쳤다. 학교 측은 이들을 중징계할 방침이다.

B노인복지시설은 장 군 등이 할머니들을 모독하고 그 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혐의로 고발하기로 했다. 전남 순천경찰서는 장 군 등 2명을 조사해 입건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광주·순천=이형주 기자 peneye09@donag.com
#장애인#치매노인#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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