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 현대제철 보수작업중 협력사 근로자 5명 질식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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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로 내화벽돌 교체작업후 쓰러져… 아르곤 가스 유출로 산소부족 추정
유족 “무리한 지시-관리부재 인재”… 9개월새 감전 등 사고로 9명 숨져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에서 작업하던 근로자 5명이 아르곤 가스로 인한 산소 부족으로 질식해 숨졌다. 이 제철소에서는 지난해 9월 이후 감전과 추락, 질식 등 각종 사고가 반복되고 있어 심각한 안전 불감증에 빠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유족들은 “공사 기간을 줄이기 위한 현대제철의 무리한 작업 지시와 관리감독 부재가 빚은 인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고는 10일 오전 1시 45분경 제강공장 제3 전로(轉爐)에서 발생했다. 전로는 고로에서 녹인 쇳물을 공장 내 철로시설을 통해 운반한 뒤 불순물을 제거하는 공정이 이뤄지는 곳이다. 협력업체 한국내화 소속 근로자 남정민 씨 등 5명은 내화벽돌 교체 작업을 끝낸 뒤 유압 작업대를 제거하다 산소 부족으로 쓰러졌다. 이들은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오전 2시 반경 모두 숨졌다. 현대제철 측은 “밖에 있던 다른 근로자들이 전로에 들어간 동료 근로자들이 나오지 않아 들어가 보니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름 8m, 높이 12m의 전로 맨 위에서부터 아래로 작업대를 제거하면서 내려오다 높이 5m 부근에서 질식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관계자는 “공기보다 무거운 아르곤 가스가 스며들어 전로의 아래 부분을 채우면서 산소가 부족해져 질식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전로 가동에 쓰이는 아르곤 가스는 자체로 독성은 없지만 밀폐 공간에서 산소 결핍을 초래할 수 있다. 현대제철이 사고 당시 현장의 산소농도를 측정한 결과 작업 기준치인 22%에 못 미치는 16%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당시 근로자들은 가스 누출에 대비한 산소마스크는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아르곤 가스를 전로에 주입하는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산소마스크는 필요 없었다”고 했다.

경찰은 아르곤 가스가 어떻게 전로에 유입됐는지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업자들은 내화벽돌 교체 공사를 위해 2일 전로 바닥의 아르곤 가스 배관(6개)을 제거했다가 9일 다시 설치했다. 숨진 채승훈 씨의 부친인 채상옥 씨는 “배관 설치와 가스 주입은 작업이 끝나고 작업자들이 모두 철수한 상태에서 해야 하는데 미리 하는 바람에 참변을 불렀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일단 배관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미뤄 누군가가 고의로 밸브를 풀었거나 부주의 또는 기계 고장으로 밸브가 풀려 아르곤 가스가 유입된 것으로 보고 밸브를 모두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정을 의뢰했다.

현대제철과 한국내화는 사고 신고도 뒤늦게 했다. 사고 현장을 발견한 지 45분 후인 오전 2시 반경 119구조대에 연락했다. 경찰은 사고 근로자들이 모두 숨진 지 1시간여가 지난 오전 3시 44분경에야 이들 회사가 아닌 119구조대에서 연락을 받았다. 고용노동부 천안고용노동지청은 오전 6시 37분에야 보고를 받았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그동안 사고가 계속돼 왔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충남지역본부에 따르면 당진제철소에서는 지난해 9월 이후 7건의 안전사고로 근로자 9명이 숨지고 1명이 의식불명이다. 지난해 9월 5일 철 구조물 해체 작업을 하던 홍모 씨(50)가 구조물이 쓰러지면서 숨졌다. 한 달여 뒤인 10월 9일에는 크레인 전원공급 변경을 위해 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던 근로자가 고압 트롤리바에 감전된 뒤 추락해 숨졌다.

이번 사고 유족대표인 홍석훈 씨(39·홍석원 씨의 형)는 “모든 작업은 원청업체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는 만큼 이번 사고는 원청업체의 살인행위”라며 “장례식장에 현대제철의 책임자 중 누구 한 명이라도 나와 사고 경위를 설명하거나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분개했다.

이번 사고는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작업을 하다 발생했다는 점에서 최근 발생한 중대 산업재해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망자 △이응우(42) △홍석원(35) △이용우(32) △채승훈(30) △남정민(25)

당진=지명훈·이성호 기자 mhjee@donga.com
#현대제철소#근로자사망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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