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발레도 운전도 안전거리는 철칙”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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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엄재용-황혜민 부부
“群舞때 바싹 붙다간 와르르… 도로에서도 서로 양보하길”

엄재용(왼쪽) 황혜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부부가 14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 발레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엄재용(왼쪽) 황혜민 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 부부가 14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 발레연습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마법에 걸려 백조로 변한 오데트 공주와 지그프리드 왕자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발레 ‘백조의 호수’. 이 환상적인 발레 속 왕자가 서울 시내에서 운전대를 잡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기품 있는 핸들링, 꼬리 물지 않는 느긋함, 그리고 입가엔 양보의 미소?

조수석에 탔던 오데트 공주는 손사래를 쳤다.

“말도 마세요. 어찌나 신호도 안 지키고 쌩쌩 달렸는지…. 옆에서 천천히 가라고 잔소리도 많이 했어요. 다행히 결혼하고선 변했어요.”

14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지그프리드 왕자와 오데트 공주를 만났다. 12일 막을 내린 발레 ‘백조의 호수’의 남녀 주인공 엄재용 씨(34·유니버설발레단 수석무용수)와 황혜민 씨(35·〃). 이 둘은 지난해 8월 결혼한 국내 첫 ‘수석무용수 부부’다.

황 씨는 첫마디에 “발레나 운전이나 안전거리를 안 지키면 사고가 난다는 점에서 똑같다”고 말했다. 여러 명이 줄지어 무대에 등장하는 군무 동작에선 음악에 맞춰 앞 사람과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특히 사뿐사뿐 날듯 뛰어 등장할 때 주의해야 한다. 연습 때라고 무심코 앞 사람에 가까이 붙다간 자칫 도미노처럼 줄줄이 넘어지기도 한다. 황 씨는 “앞 차에 따라붙으려고 안전거리를 무시하다 몇 중 추돌사고 나는 장면과 똑같다”고 말했다.

남편 엄 씨는 운전면허를 미국에서 처음 땄다. 2001년 미국 워싱턴의 키로프 발레아카데미에 다닐 때였다. 이때 미국 교통경찰의 ‘암행단속’을 경험했다. 워싱턴에서 뉴욕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었던 엄 씨. 갑자기 사이드미러에 경찰차가 경광등을 번쩍이며 따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엄 씨는 갓길에 차를 세웠다. 과속이었다. 엄 씨는 당시 약 100달러(11만1600원)를 벌금으로 냈다.

엄 씨는 “지나온 길에 경찰차가 있는 걸 못 봤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났다”며 “한국처럼 단속 예고 표지도 없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한국에선 ‘함정단속’이라고 난리칠 일이지만 과속 등 반칙운전을 엄격히 단속하기 위해 미국에선 일반화된 방식이라고 했다.

엄 씨는 “워싱턴에선 운전자들이 조그마한 것도 양보하면 서로 창문 내려 일일이 손 흔들고 웃어주는데 한국에 온 뒤 그런 모습을 한 번도 못 봤다”고 아쉬워했다. 황 씨는 “발레도 남자 무용수나 여자 무용수가 자기만 튀려고 하다간 상대방에게 폐를 끼치고 작품을 망칠 수 있다”며 “운전할 때도 다른 운전자와 서로 조화를 이뤄야 아름다운 도로가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운전#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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