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 쓰던 ‘익선관’ 추정 유물 공개…훈민정음 제자해 활자본 들어 있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7일 0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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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이상규 교수 연구팀… 임란 때 日 약탈, 국내 소장자가 구입


세종대왕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익선관(翼善冠·왕이 집무할 때 쓰던 모자)이 발견됐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익선관은 임진왜란 때 왜군에게 약탈당해 일본에 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익선관 안에는 간송 미술관 소장 훈민정음 해례본보다 앞섰을 수도 있는 훈민정음 제자해(훈민정음 제작에 대한 풀이) 활자본이 들어 있어 향후 한글 창제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경북대 국문과 이상규(60·전 국립국어원장) 교수 연구팀은 27일이 이같은 연구 결과와 함께 유물을 공개했다.

이 교수는 "임진왜란 때 왜적에게 탈취당한 왕실 유물 가운데 세종대왕이 착용한 사조용(四爪龍)이 새겨진 익선관"이라며 "지난해 한 국내 콜렉터가 일본에서 구입해 국내로 들여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 익선관은 매우 정교한 문화재로 특히 내부에 훈민정음 관련 자료가 들어 있다는 점에서 훈민정음 창제 과정, 왕실 임금의 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에 연구팀이 확인한 익선관은 주로 흙색 바탕의 천에 금실 등으로 용, 모란꽃과 넝쿨, '王'(왕)자와 '卍'(만)자 등이 수놓아져 있다.

연구팀이 세종대왕의 유물로 추정하는 근거는 모자에 새겨진 용 무늬에 사조(四爪) 즉 4개의 발톱이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세조 2년(1456년)의 '세종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세종 26년(1444년)까지는 사조용의(四爪龍衣)를 입다가 같은 해 3월 26일 명으로부터 오조용복(五爪龍服)을 하사받아 이때부터는 오조용복을 입은 것으로 전해진다.

즉 오조용의(五爪龍衣)로 바뀌기 전의 익선관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라는 것이다.

연구팀은 또 익선관 내부의 모기장처럼 다소 성긴 마감재인 붉은 도류사(桃榴紗) 안에 훈민정음 제자해와 관련된 기록이 활자본 형태로 여러 겹 들어 있다고 밝혔다.

임금의 사조용의 착용 시점만 놓고 보면 내부 훈민정음 자료는 세종 28년(1446년) 간행된 훈민정음 해례본보다 앞선다는 추정도 가능하다.

연구팀은 유물이 훼손될까봐 아직 익선관을 해체하지 않았으며, 소장자가 이 유물에 대해 국가 기증 의사를 밝힘에 따라 추후 문화재청 등과 협의, 익선관 내부 자료도 분석해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이 익선관이 정말 세종대왕의 유물이 맞는지 여부는 이러한 과정에서 문화재 전문가들의 세밀한 검증을 통해 밝혀질 전망이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목재 문화재 연구가 박상진 경북대 명예교수도 "보존이 잘 이뤄졌다면 수백년 된 유물이 이만큼 좋은 상태로 남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하지만 탄소연대 분석을 통해야 가장 근접한 시대를 밝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탄소 연대 측정도 ±40~50년의 오차가 있어 실제와 100년 정도의 차이가 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유물이 임진왜란 전의 것인지 후의 것인지는 분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익선관에서 훈민정음 자료가 나온 데 대해 이 교수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관련 사료를 익선관 안에 넣어 지닐 정도로 훈민정음을 만드는 데 고심하고 열정을 쏟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익선관은 임진왜란 이전 조선 왕실의 유물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이 임진왜란을 통해 탈취해간 왕가 유물에 대한 소재 파악과 국내 송환을 촉구하는 결정적인 단서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동아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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