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 판매업자가 230차례 수술 ‘엽기 병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7일 03시 00분


경찰, 수술지시 병원장 구속
왼발 다친 환자 오른발 수술… 간호조무사에 수술실장 맡겨
환자에 고액보험가입 유도… 보험금 100억원 부당 수령도

김모 병원장(49)은 2011년 2월 7일 경남 김해시에 A종합병원을 세운 뒤 “수술 잘하고, 진단서 잘 발급해 주는 병원”으로 입소문을 냈다. 환자와 짜고 수술을 한 것처럼 허위로 꾸며 보험금을 받게 해줬다. 허위 진단서를 발급하고 뒷돈을 챙겼다. 허가받은 250병상보다 50∼100병상을 초과해 환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정작 본업에는 무관심했다. 요로결석 환자를 담낭결석으로 오진하거나 왼발을 다친 환자의 오른발을 수술하는 ‘의료 사고’를 냈다.

더 황당한 건 의료 자격이 없는 이에게 수술을 지시한 것. 지난해 1월부터 9개월 동안 간호조무사 허모 씨(48)에게 맹장 절개 수술과 골절된 뼈 접합 수술을 110여 차례나 맡겼다. 허 씨의 공식 직함은 ‘수술실장’. 환자가 마취되면 김 원장은 허 씨가 20여 년간 간호조무사 생활을 해 수술을 많이 지켜본 경험이 있다며 수술을 맡겼다.

의료기 관련 판매업체 대표 황모 씨(44) 역시 의사 역할을 대행하도록 했다. 황 씨는 20년간 의료기기를 판매하면서 관절 내시경을 조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김 원장은 황 씨에게 십자인대 파열 환자의 무릎을 절개해 인공 십자인대를 삽입하는 수술을 230여 차례나 하도록 했다.

부산경찰청 광역수사대는 26일 김 원장을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병원 전직 직원의 제보로 꼬리가 잡힌 것. 또 의사 자격 없이 수술을 한 간호조무사 허 씨와 의료기판매업체 대표 황 씨도 같은 혐의로 구속하고 나머지 관련자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A 병원은 2011년 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1100건에 걸쳐 약 12억 원의 보험급여를 부당하게 수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환자에게 수술로 입원할 때 고액 보험금이 나오는 상품에 가입하도록 유도했다. ‘가벼운 수술만 받아도 거액의 보험금을 탈 수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충청, 제주 지역에서 원정을 오는 환자도 있었다. 이렇게 온 600여 명의 환자들이 2011년 2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각 보험사에서 부당 수령한 보험금은 100억 원에 이른다. 경찰은 허위로 보험금을 받은 이들을 확인한 뒤 모두 보험사기로 입건할 방침이다.

방원범 광역수사대장은 “의료기기 업자들은 수술에 쓰이는 재료를 팔기 위해 김 원장 대신 수술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라며 “A병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의심되는 마약 투약과 조폭 관련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조용휘 기자 sile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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