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일제에 빼앗긴 배움의 꿈… 69년만에 초교 졸업장 받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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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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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능주초교 출신 김재림씨 1944년 근로정신대 끌려가
시민모임 재발급 추진 성사

김재림 할머니가 지난달 11일 모교인 전남 화순군 능주 초등학교를 찾아가 졸업장을 받았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김재림 할머니가 지난달 11일 모교인 전남 화순군 능주 초등학교를 찾아가 졸업장을 받았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
김재림 할머니(83)는 19일 평생에 다시없을 특별한 외출을 한다.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김 할머니는 69년 만에 손자 또래 모교 후배들과 함께 졸업장을 받는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19일 김 할머니가 모교인 전남 화순 능주초등학교에서 졸업장을 재발급 받는다고 밝혔다. 능주초교는 이날 100회 졸업식을 갖는다. 김 할머니를 비롯해 총 32명이 졸업장을 받는다.

시민모임은 김 할머니가 “졸업장을 받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히자 지난달 11일 능주초교를 찾았다. 시민모임은 능주초교 문서고에 있는 일제강점기 학적부를 뒤져 1944년 3월 25일 31회 졸업생 명단에서 창씨개명된 김 할머니의 이름을 확인했다. 이에 능주초교는 올해 100회 졸업식을 맞아 김 할머니에게 졸업장을 재발급해 주기로 결정했다. 박종기 능주초교 교장은 “졸업장은 김 할머니의 고단한 삶에 위로와 용기를 전하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 할머니의 아픈 기억은 일제의 폭압이 극에 달하던 194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향이 전남 화순인 김 할머니는 당시 광주의 한 친척 집에 살며 가사를 돕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같은 해 5월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할 수 있다”는 친척의 말에 속아 일본행에 나섰다.

일본에 끌려가서도 공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김 할머니의 기대와 달리 군수업체 미쓰비시중공업이 운영하는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어린 나이에 허기에 지친 몸으로 혹독한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광복 이후 고국에 돌아와서는 “일본군 위안부 아니었느냐”는 손가락질에 정신적 고통까지 겪었다. 김 할머니는 “뒤늦게 졸업장을 다시 받는다고 하니 새 신부처럼 가슴이 떨린다”며 기뻐했다.

시민모임은 일제강점기 어린 나이에 강제 동원돼 학기를 마치지 못한 피해자들의 졸업장을 받아주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는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을 위한 것이다. 2008년 나주초등학교는 6학년 재학 중 1944년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 동원된 양금덕 할머니 등 2명에게 명예 졸업장을 수여했다. 또 같은 해 순천남초등학교는 일본 군수업체 후지코시강재공업에 동원된 근로정신대 피해 김정주 할머니에게 졸업장을 재발급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김재림#근로정신대#능주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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