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죽은 뒤 자식 액운 푸는데 2억원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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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죽은뒤 무속인 만난 주부… 버는 족족 76차례 기도값 송금
법원 “1억9000만원 돌려줘라”

1994년 대구에서 남편과 작은 횟집을 열었던 A 씨. 1남 3녀를 키우는 데 별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1997년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가족 모두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혼자서 자식들을 돌보는 게 벅찼던 그는 이웃 소개로 용하다고 소문난 무속인 B 씨를 만났다. B 씨는 A 씨를 보자마자 “가족이 모두 죽을 운이 들었다. 남편이 죽은 것은 돈 때문이다”라며 겁을 줬다. 이어 “자식들을 살리려면 가진 돈을 보내 액운을 풀어라”고 꼬드겼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A 씨는 B 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남편이 죽은 것도 자신의 탓이라고 여기고 이때부터 B 씨의 은행계좌에 ‘기도값’ 명목으로 돈을 보냈다. 횟집 문을 닫기 전인 2002년 한꺼번에 1억 원도 송금했다. 형편이 어려워진 2003∼2005년에는 식당종업원으로 일해 번 돈 2500여만 원도 수시로 보냈다. 2007년부터는 자식들 용돈과 빌린 돈까지 보태는 등 76차례에 걸쳐 2억4500여만 원을 송금했다. A 씨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다.

B 씨 덕에 액운을 없앴다고 믿었던 A 씨는 2009년 B 씨가 암으로 사망하자 그제야 거짓말에 속은 것을 깨닫고 B 씨의 유족을 상대로 소송(보관금 반환)을 냈다.

대구고등법원 제3민사부는 최근 “보통 점을 봐주고 한 차례 1만∼30만 원을 받는 것을 감안하면 B 씨의 무속행위는 종교 상식을 벗어난 것”이라며 “A 씨의 부주의를 이용해 무속행위 구실로 재산을 가로챈 것이므로 B 씨의 유족은 1억9000여만 원을 A 씨에게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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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장영훈 기자 jang@donga.com
#무속인#주부#기도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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