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적 거세? 피해자들 평생 고통 비하면 처벌도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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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성폭행 피해여성, 본보에 울분 토로

“성폭행 피해 아동에게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어른이 돼서야 그걸 알았습니다. 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제 고통을 알리기로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에 분노가 느껴졌다. 어린 시절 수차례 성폭행을 당한 A 씨(35·여). 성폭행으로 짓밟혔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치를 떨었다. 서울 남부지법이 10대 소녀 5명을 성폭행한 표모 씨(31)에게 성충동 약물치료를 명령했다는 판결이 난 직후였다.

그는 서른이 될 때까지 가족에게도 숨겨 왔던 이야기를 기자에게 털어놨다. 피해자들이 울부짖으면서 고통을 표출하면 ‘솜방망이 처벌’이 바뀌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다.

악몽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시작됐다. 그는 부모님이 이혼한 뒤 외갓집에서 지냈다. 호텔 조리사였던 엄마는 집을 자주 비웠다. 외할머니마저 집을 비우면 외할아버지는 그의 손에 100원을 쥐여주고는 성추행을 했다.

“누구에게라도 이 사실을 말하면 엄마를 죽여 버리겠다.” 이 협박에 그는 엄마를 잃을까 봐 벌벌 떨어야 했다. 6학년 때까지 피해를 당했다. 그러던 중 스케치북에 성관계 장면을 그리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다. 그가 숨겨 뒀던 스케치북을 화가였던 이모가 어느 날 발견했다. 엄마의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갔지만 아무도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라고 묻지 않았다. 성추행 장면을 목격한 외할머니는 그가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이도록 했을 뿐 특별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

6학년 때였다. 동네 친구 4명과 한창 신나게 놀고 있었다. 30대로 추정되는 남자가 다가왔다. “부모님이 아파 잎사귀를 달여 먹여야 돼. 산에서 잎을 따려는데 도와줄래?”

순진한 아이들은 남자를 따라 산으로 갔다. 남자는 산에 들어가자마자 악마로 돌변했다. 아이들을 협박해 옷을 벗게 했다. 강간과 성추행이 이어졌다. 엉엉 우는 아이들에게는 “소리를 내면 죽여 버리겠다”고 윽박질렀다. 아이들은 꺽꺽대며 눈물을 삼켰다.

그 후 A 씨는 악몽에 자주 시달렸다. 성폭행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자책했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어서 벌을 받는가? 팔자가 사나워서인가?”

중학생이 된 후에는 남성혐오증이 생겼다. 세상의 모든 남자가 짐승으로 보였다. 남자 친구가 어쩌다 몸을 살짝 건드리면 즉시 이별을 통보했다. 연애는 채 한 달을 넘기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성격도 변했다. 별것 아닌 일에 화를 내고,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게 됐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면서도 쉬쉬한 가족도 원망스러웠다. 자신의 가혹한 운명은 더 서러웠다. 사람들이 “너, 성격이 왜 그래?”라고 타박해도 그냥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상처를 털어놓을 수는 없잖은가.

A 씨는 성폭행 가해자를 잔인하게 죽이는 상상을 자주 했다. 누군가가 또 자신을 건드리면 직접 보복을 하려고 킥복싱도 배웠다. 지난해 결혼한 뒤 남편에게 엉엉 울면서 피해 사실을 털어놨지만 상처는 좀처럼 치유되지 않았다. 임신 5개월째이지만 그의 후유증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A 씨는 새로운 결심을 했다. 아픈 과거이지만 성폭행 피해자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를 알리기로 했다. 배 속의 아이에게 해가 될까 봐 망설이기도 했지만 용기를 냈다. 얼마나 힘들고 아프고 괴로웠는지를 알려야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동성범죄 피해자의 고통을 생각하면 성충동 약물치료가 아니라 사형을 구형해도 모자랍니다. 많은 사람이 성범죄 피해에 대해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해 줬으면 합니다.”

[채널A 영상] “성관계 가르쳐 줄게” 초등생 집 찾아가…


[채널A 영상] 첫 ‘화학적 거세’ 판결…성범죄 예방 도움될까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성폭행#화학적거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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