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베트남 중국 필리핀 출신의 행복자람교실 유아반 다문화가정의 다섯 엄마와 여섯 아이들이 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서 합주반 어린이들과 함께 모차르트의 ‘작은 별’을 연주하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17일 오후 7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조명은 행복자람교실 바이올린반의 혜영이(10·여)와 지휘자 김헌경 씨를 비췄다. 김 씨에게 다가온 혜영이는 “선생님, 여긴 무슨 방이에요?”라고 물었다. 두 사람의 대사가 이어졌다.
“거기 들어가도 되나요?” “수수께끼 하나를 맞혀야 한단다. 아침엔 사랑, 점심은 기쁨, 저녁은 행복인 것은 무엇일까?” “친구들과 함께 풀어도 되나요?” “그럼, 모두 데리고 오너라.”
혜영이가 무대 옆을 향해 손짓하자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면서 연주회의 본격적인 막이 올랐다. 수수께끼의 답을 궁금해하는 관객 반응 속에 아이들의 첫 연주가 펼쳐졌다.
첫 곡은 김헌경 씨가 작곡한 ‘행복나눔친구’. “바이올린 친구∼!” 아이들의 구령으로 시작된 바이올린 연주는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 그리고 음악선생님들의 연주와 화음이 돼 퍼져 나갔다. 올봄부터 4계절을 땀 흘린 아이들이 주인공이 돼 손님을 맞은 ‘행복자람교실’의 첫 연주회였다.
올 한 해 금호석유화학과 동아일보가 다문화가정 및 저소득층 자녀들을 위해 추진한 예술교육 프로젝트를 결산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는 아이들에게 자긍심과 건강한 꿈을 심어주는 데 무엇보다 예술교육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 출발했다. 훗날 아이들이 자신의 재능을 이웃에게 나누는 ‘나눔무대의 주역’으로 서길 바라는 뜻도 담았다.
무대의 아이들은 새터민 자녀를 포함한 서울 서대문지역 다문화가정과 광암지역아동센터(은평구 응암동) 초등학생 등 29명과 다문화가정 유아(5∼7세) 6명 등 모두 35명. 다문화가정 부모의 고향은 중국, 일본, 캐나다, 필리핀, 베트남, 베네수엘라, 대만 등 7개국이다.
퀵서비스 기사인 한국인 남편의 수입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일요일마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 필리핀 장터에서 생활비를 버는 필리핀계 엄마. 아빠의 실직으로 가슴앓이하던 사춘기 아이. 대부분 예술 교육엔 엄두를 내지 못하던 처지였다. 행복자람교실을 만나기 전까진 그랬다.
지역아동센터의 경우 부모의 이혼으로 ‘한 부모 가정’이 된 아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음악 교육을 받으며 아이들은 자신감을 쌓았다. 이 아이들 곁에는 1년 동안 음악 선생님 8명이 있었다. 낯가림이 심해 음악교실 앞에 책가방을 팽개치고 달아난 아이, 또래와 다툴 때면 분을 삭이지 못해 울음부터 터뜨리던 아이는 차분한 바이올린 소녀와 비올라 소년으로 성장했다.
모두 악기를 배우면서 얻는 성취감과 음악교실에 배어 있는 배려와 화합 덕분이다. 1년 가까이 변화를 지켜본 서대문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사회복지사 박수미 씨(33·여)는 아이들의 연주 무대를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연주 실력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이 자리까지 온 게 소중한 경험이니까요. 음악을 배우면서 꿈을 키우는 모습을 보면 예술 교육의 중요성을 정말 실감해요.”
무대 한쪽에서 제 키만 한 더블베이스를 켜던 박상훈 군(13)의 활도 리듬을 타고 있었다. 내년이면 중학생이 되는 박 군의 더블베이스는 객석에서 응원하는 엄마와 동생에게 전하는 자신감의 상징인 듯했다.
아동센터 친구들에게 떠밀리다시피 택한 악기였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소중한 벗이다. 그래서 박 군은 고등학교까지 더블베이스를 배워 더 넓은 세상과 만나고 싶단다. 장애로 불편한데도 도환(12·비올라), 용환(10·첼로) 형제를 보기 위해 공연장을 찾은 엄마 권미애 씨(40)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추스를 수 없을 정도라고 했다. 실수할까 봐 공연 내내 떨었다는 중국계 엄마 뤄펀지 씨(37)는 딸 정하 양(8)의 차분한 연주가 끝나자 손이 아플 만큼 쉬지 않고 손뼉을 쳤다.
아이들을 지도한 음악교사들은 행복자람교실이 긴 호흡을 담아 한국 사회에서 나눔의 디딤돌이 되기를 희망했다.
“훗날 아이들이 커서 음악을 전공하지 않더라도 이웃과 즐겁게 음악을 나눌 수 있는 어른이 됐으면 해요. 행복자람교실은 예술 교육의 좋은 본보기가 될 거예요.”(첼로 교사 강군도 씨)
공연을 시작한 지 1시간 정도 흘러 마무리할 즈음. 음악감독 서의숙 씨가 수수께끼 정답을 묻자 아이들이 일제히 정답을 외쳤다. “나눔요∼.”
○ 필자: 봄에 만난 아이들은 또래와 선생님들에게 ‘사랑’을 나눠 주었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기쁨’을 주었죠. 그리고 겨울 첫 무대에선 관객들과 저에게 ‘행복’을 선사했습니다. 꿈나무들의 겨울 하모니는 바로 사랑, 기쁨, 행복을 연주하고 배운 나눔 무대였던 것 같습니다. 한 해 동안 이 아이들의 성장기를 지켜봐 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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