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삭아내 살해’ 의사 파기환송심서도 20년형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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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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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사고 아닌 목졸려 숨진 것으로 판단”

제2의 ‘치과의사 모녀 사망 사건’ 논란을 일으켰던 ‘만삭 의사 아내 사망 사건’에서 남편에게 다시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윤성원)는 지난해 출산을 앞둔 아내 박모 씨(당시 29)를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남편 백모 씨(32·소아청소년과 수련의)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7일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이날 재판은 지난해 열린 1, 2심에서 유죄가 선고된 이후 6월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해 서울고법에 사건을 돌려보내 열린 선고공판이다. 이 사건은 지난해 1월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아파트에서 남편이 출근한 뒤 만삭 상태였던 피해자가 집 안 욕조에서 질식사한 채 발견돼 남편이 범인으로 지목된 사건이다.

재판부는 1, 2심과 같이 유죄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 “피해자의 목 부위 피부가 까져 있고, 오른쪽 턱뼈 주변의 멍, 근육 내 출혈, 정수리와 얼굴의 상처 등으로 미뤄 보면 피해자가 백 씨의 주장처럼 욕조 안에서 혼자 쓰러져 욕조에 뒤통수를 부딪친 후 목이 꺾여 숨진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목이 졸려 숨진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부인의 출산과 남편의 전문의 자격시험 준비로 부부가 예민한 상황이었고, 피해자가 백 씨의 게임중독 증세로 다툼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감정이 상해 우발적으로 피고인이 피해자의 목을 조르는 상황에 이르렀을 수 있다”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백 씨는 “(피해자의) 목 부위에서 발견된 상처와 출혈은 혼자 쓰러져 목이 눌린 상태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치다가 피부끼리 마찰이 생겨서 났을 수 있고, 오랜 시간 목이 눌려도 내부출혈이 생길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부의 손상 정도나 방향으로 볼 때 접혀 있는 목 피부끼리의 마찰로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백 씨의 주장을 일축했다.

백 씨는 또 수사과정에서 시신의 직장 온도를 측정해 피해자의 사망시간을 추정한 결과 백 씨가 사건 당일 집을 나선 오전 6시 40분 이후인 오전 7시∼8시 40분에 사망했다는 결과를 들어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직장 온도를 측정한 곳이 사건 현장이 아니라 시신을 옮긴 영안실에서 이뤄졌고, 이동 과정에서 시신의 온도가 급격하게 내려갔을 수 있어 이 결과로 사망시간을 추정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 이어 “최초 사건 현장에서 시신을 검안한 결과에 따라 사망시간을 당일 오전 6∼8시로 볼 수 있다”라며 “여기에는 5∼6시간의 오차가 날 수 있어 백 씨가 사건 당일 집을 나서기 전 피해자와 함께 있었던 시간에 범행을 저질렀을 수 있다”라고 밝혔다. 유죄가 선고된 직후 피해자의 아버지는 “사법부와 검찰이 사건의 가려진 진실을 밝혀 줘 진심으로 감사하다”라고 말했다.

백 씨가 재상고함에 따라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된다. 만약 대법원이 파기환송심 재판부의 판단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다시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돌려보낼 수 있지만 통상 이런 경우는 거의 없다. 법원 관계자는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한 것은 무죄 취지라는 게 아니라 유죄를 충분히 입증하라는 취지였다”라며 “6개월간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유죄가 명백히 드러나 유죄 판결이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남편이 용의자로 지목됐고, 살인을 입증할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정황증거를 놓고 유무죄를 가린 사건이라는 점에서 치과의사 모녀 사망 사건과 비슷했다. 치과의사 모녀 사망 사건은 1995년 6월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한 아파트 욕조에서 여성 치과의사와 그의 딸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당시 남편인 외과의사가 살인범으로 기소돼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 무죄, 대법원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파기환송심 무죄의 과정을 거쳐 2003년 대법원에서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라는 이유로 무죄가 확정됐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만삭 의사아내#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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