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法 ‘강간살해 양형기준’ 법정 최저형보다도 낮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2일 03시 00분



극악한 살인범에 대한 법원의 양형기준 형량이 관련법에서 정한 최저 형량보다 가벼운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되고 있다. 중요 범죄에 대한 양형을 구체적이고 엄격하게 정해 형량이 법관에 따라 들쭉날쭉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마련한 양형기준이 오히려 현행법을 넘어선 권한을 법관에게 주고 있는 셈이다.

오원춘(42) 김점덕(45)에 대한 무기징역 선고로 인해 법원 양형의 적절성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동아일보는 21일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살인 범죄 양형기준’을 분석했다.

오원춘과 김점덕의 범죄는 제4유형인 ‘중대범죄 결합 살인’에 해당한다. 이 유형은 강간, 강제추행, 미성년자 약취나 유인, 인질, 강도 범죄를 저지른 뒤 피해자를 살해한 경우로 양형기준에서는 기본 형량을 징역 17∼22년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9조 1항은 △여성 △13세 미만 아동 △장애인을 성폭행하거나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경우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선고하도록 하고 있다. 오원춘과 김점덕에 대한 법정 최저형이 무기징역인데, 법원은 징역 17∼22년을 기본 형량으로 놓고 이들의 범죄를 심리하고 형량을 정했다는 얘기다.

양형기준에는 기본 형량을 중심으로 형을 더 무겁게 할 수 있는 ‘가중요소’와 형을 낮춰줄 수 있는 ‘감경요소’를 두고 있어 실제 이들에게는 기본 형량보다 높은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오원춘과 김점덕의 범죄에 가중처벌 요소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범죄자가 성폭행 살인을 저질렀을 경우 감경요소가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징역 14년만 선고될 수도 있다. 성폭행 살인범에 대해 무기징역이나 사형만 선고하도록 한 법을 판사가 지키지 않아도 되는 지침을 만든 셈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법원이 만든 양형기준은 명백한 실정법 위반”이라며 “미성년자 유괴 살인이나 강간 살인, 연쇄 살인 등 극악한 범죄의 경우 기본형량을 무기징역으로 두고 가중형량을 사형으로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측은 “법관이 범죄의 정도, 피해 수준 등을 감안해 형을 감경할 수 있는 만큼 반드시 법이 정한 양형을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양형 기준은 판례 등 종합적인 상황을 고려해 만든 것”이라고 밝혔다.

법원이 오원춘 김점덕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근거로 밝힌 이유도 논란이 되고 있다. 오원춘 사건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5부는 오원춘의 불우한 환경과 교화 가능성 등을 언급하며 1심 법원이 선고한 사형을 무기징역으로 낮췄다. 김점덕 사건을 맡은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1부도 김점덕이 피해자를 협박할 때 흉기를 쓰지 않았고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다는 점을 들어 사형 대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가중처벌 요소가 있어 사형을 선고할 수 있지만 감경요소가 있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재판부가 내세운 이유들은 법원이 만들어 놓은 양형기준표의 감경요소에 해당하지 않는다. 감경 요소는 △피해자의 과잉 방위 △미필적 고의 △피해자의 범행 유발 △자수 △진지한 반성뿐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하는 데 부담을 느껴 자의적으로 감형 근거를 만든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법원#양형기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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