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 쓰다 기증 결심”27세 천사의 ‘신장’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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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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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장기 기증의 날… 박성희 씨의 사랑 실천

생면부지의 남에게 신장을 기증한 박성희 씨가 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던 도중 수술 부위에 손을 대며 “잘 회복됐다”고 말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생면부지의 남에게 신장을 기증한 박성희 씨가 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던 도중 수술 부위에 손을 대며 “잘 회복됐다”고 말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어머니가 처음 장기 기증 사실을 알고는 펄쩍 뛰셨지요. 하지만 원래 간병 일을 하시는 분이라 곧 이해해 주셨습니다.”

생면부지인 한 여성의 선행이 죽음의 문턱에 서 있던 한 사람의 생명을 구했다.

대학원 진학을 준비 중인 평범한 여성 박성희 씨(27)가 장기 기증을 결심한 것은 지난해 겨울.

가정형편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했던 그는 2007년 대학에 진학했다. 2010년 졸업 후 대학원 진학 공부를 하던 그는 지난해 5월 미래에 대한 고민과 불안 등으로 슬럼프에 빠졌다. 무기력하기만 했던 시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박 씨는 평소에 ‘해볼까’라고 생각했던 일을 ‘하자’로 바꾸기로 마음먹고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스스로 하고자 하는 일의 목록)를 작성했다. 영화 보기, 클래식 기타 배우기 등 사소한 것, 큰 것 할 것 없이 리스트를 쭉 적어가며 하나씩 실행하던 박 씨에게 문득 ‘생존 시 장기 기증을 해보자’는 생각이 떠올랐다.

박 씨는 “처음부터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라는 거창한 목표를 세운 것이 아니었다”며 “생각이 들자 별 고민 없이 올 1월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1588-1589)에 서류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박 씨의 장기 기증에 대한 생각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고교 졸업 직후인 2004년 ‘사후 장기 기증’을 서약했던 것. 여기에는 2004년 뇌사 후 장기 기증으로 6명에게 새 생명을 주고 세상을 떠난 지인의 영향이 컸다. 박 씨는 “직장생활 당시 거래처 지인이던 분과 뇌사 전날까지 통화를 했다”며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다른 생명을 살리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장기 기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씨는 6월 21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신장 이식 수술을 받았다. 처음으로 해보는 입원과 수술. 박 씨는 “장기 기증 소식을 듣고 어머니가 처음에는 펄쩍 뛰셨다”며 “장기 기증은 사후에나 하는 것으로 아신 것 같다”고 말했다.

비록 몸에는 수술 자국이 남았지만, 그의 선행으로 5년간이나 삶과 죽음의 문턱에서 기다림을 계속해 왔던 박금자 씨(44)는 새 생명을 찾을 수 있었다.

박금자 씨는 2002년 만성신부전증이 발병해 10년간 투병해 왔다. 합병증으로 청력도 완전히 잃어 의사소통까지 어려워졌고, 일도 할 수 없어 기초생활수급자가 됐다. 하루에 4번씩 스스로 약물을 투여하는 복막투석을 해야만 하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온 것.

2007년 이식대기자로 등록하고 5년을 기다려 이식을 받은 그는 수술 후에 만난 박성희 씨에게 “정말 천사 같은 분이시다”라며 감사했다. 박금자 씨는 “얼굴도 모르는 저에게 이렇게 선뜻 신장을 기증해준 은혜와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의 노력에 뭐라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성희 씨는 “신장을 하나 뗐지만 아주 건강히 잘 살고 있다”며 “9일이 ‘장기 기증의 날’인데,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나눔으로써 이렇게 행복하고 기뻐짐을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사랑의 장기기증운동본부 박진탁 본부장은 “현재 국내에 각막 신장 골수 등 이식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사람은 8월 말 기준으로 2만2710명이지만 이식을 받는 사람은 2011년 3770명 정도”라며 “자발적 기증자와 뇌사 시 장기 기증자가 많지 않아 많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박성희#장기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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