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잠이 든 4일 오전 3시 반 서울 광진구 구의동 모 찜질방. 잠든 척 누워 있던 이모 씨(37)는 옆자리에 누워 있는 김모 씨(21·여)의 손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깊이 잠든 김 씨 손에서 90만 원짜리 갤럭시 노트가 ‘툭’ 하고 떨어지자 슬그머니 일어나 재빨리 주머니에 넣고 사라졌다. 이런 수법으로 이 씨가 7개월간 훔친 스마트폰은 확인된 것만도 150대. 시가 1억3000만 원어치다. 그는 이렇게 훔친 스마트폰을 장물아비에게 넘겼다. 장물아비는 이 씨 같은 절도범들로부터 거둬들인 스마트폰을 하루나 이틀 동안 모아 밀수출책에게 팔았다. 도난당한 스마트폰이 중국으로 밀수출되는 데까지 짧게는 3일, 길게는 5일이면 충분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19일 도난 또는 분실된 스마트폰을 전국에서 수집한 장물유통조직으로부터 스마트폰을 사들여 항공화물로 홍콩과 마카오 등지에 내다판 혐의(장물취득 등)로 밀수출업자 이모 씨(31) 등 5명을 구속하고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또 훔친 스마트폰을 이들에게 판 이모 씨(41) 등 2명을 구속하고 같은 혐의로 중고생 14명 등 21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이 훔쳐 판 스마트폰은 모두 7000여 대로 새것으로 치면 시가 63억 원어치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절도범→현장수거책(기사)→장물수집책(콜센터)→밀수출책으로 이어지는 톱니바퀴 형태의 점조직을 운영했다. 장물수집업자 강모 씨(38) 등은 지난해 7월부터 최근까지 인터넷이나 전단지를 통해 분실 스마트폰을 사겠다고 광고한 뒤 이를 보고 연락해 오는 절도범과 직접 만나거나 일명 기사(현장수거업자)를 보내 스마트폰을 사들였다. 스마트폰을 산 기사는 받는 즉시 유심(USIM·가입자 인증 식별 모듈)을 빼내 위치 추적을 피했다.
이들은 현장에 나간 ‘기사’와 5분 이상 연락이 되지 않으면 경찰에 체포된 것이라 판단하고 즉시 연락을 끊는 치밀함도 보였다.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대포폰(차명폰)을 사용하고 장물업자들 간에도 상대방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 등 철저히 점조직 형태로 운영했다.
도난 스마트폰이 중국으로 밀수출되는 데는 5일이면 충분했다. 절도범이 연락하면 2∼3시간 내에 현장수거책이 달려왔다. 수거책은 스마트폰을 구한 즉시 택배를 이용하거나 직접 ‘콜센터’로 휴대전화를 넘긴다. 콜센터는 30∼40대를 모으면 밀수출책에게 스마트폰을 넘기게 되는데 하루를 넘기지 않았다. 밀수출책은 하루에 적게는 100대에서 많게는 4000대의 스마트폰을 항공화물로 속여 중국으로 넘겼다. 도난당한 시점부터 짧게는 3일, 길게는 5일이면 스마트폰이 중국에 도착했다. 중국으로 넘어온 스마트폰은 한국에서 사용된 흔적을 모두 지우는 초기화 과정을 거친 뒤 유통됐다. 한국에서는 기계고유번호로 인해 도난·분실된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는 금세 적발되기에 이들은 중국 밀수출을 택했다.
택시 운전사와 청소년도 다수 적발됐다. 택시 운전사 전모 씨(48)는 올 2월부터 서울에서 다른 택시 운전사들로부터 손님이 두고 내린 스마트폰 400여 대를 사들여 장물업자들에게 팔아왔다. 전화 한 통이면 손쉽게 훔친 물건을 처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청소년들도 죄의식 없이 찜질방과 학교 등지에서 스마트폰 절도에 뛰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스마트폰을 손쉽게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보니 어른 아이 구분 없이 도둑질에 나서는 것 같다”며 “삼성의 갤럭시S3 등 최신제품이 주 표적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채널A 영상] 휴대전화 분실 보험, 사실상 ‘무용지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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