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위는 무장탈영 자살… 군부대는 10시간 넘도록 몰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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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정모 대위가 자살한 전남 장성군 삼계면 군인아파트. 9일 오전 9시경 육군 수사관들이 현장 검증을 위해 아파트로 들어서고 있다. 장성=이형주기자 peneye09@donga.com
육군 정모 대위가 자살한 전남 장성군 삼계면 군인아파트. 9일 오전 9시경 육군 수사관들이 현장 검증을 위해 아파트로 들어서고 있다. 장성=이형주기자 peneye09@donga.com
현역 육군 대위가 소총과 실탄으로 무장한 채 근무지를 무단이탈한 뒤 평소 좋아하던 여군 대위와 다투다 총기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부대는 사건 발생 때까지 총기와 탄약의 외부 반출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군의 총기·탄약 관리에 또다시 큰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 여군 장교와 실랑이 뒤 소총으로 자살

9일 오전 3시 9분경 전남 장성군 삼계면의 여군 장교 숙소인 S아파트 복도에서 육군 28사단(경기 연천군) 예하 연대에 근무하는 정모 대위(34·3사 38기)가 머리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다.

군 당국에 따르면 정 대위는 이 아파트에 살고 있는 김모 대위(28·여·육사 65기)를 찾아와 심하게 다투다 갖고 있던 K-2 소총에 실탄을 장전해 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정 대위가 김 대위의 아파트 출입문에 2발을 쏘고, 1발로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앞서 김 대위는 이날 오전 2시 58분경 정 대위가 자신의 숙소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자 룸메이트인 다른 여성 장교와 함께 실랑이를 벌이다 경찰에 ‘외부인이 소총을 갖고 침입했다’는 신고를 했다고 군 관계자는 전했다.

육군 관계자는 “정 대위가 김 대위를 찾아가 ‘왜 만나주지 않느냐’며 거친 실랑이와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정 대위가 격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육군에 따르면 두 사람은 같은 부대에서 1년 가까이 함께 근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부대 관계자는 “두 사람이 연인 관계였다는 얘기가 있지만 실제로 사귀었는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군 수사당국은 사건 발생 뒤 정 대위의 부대 사무실 책상 서랍에서 A4용지 2장 분량의 유서를 발견했다. 컴퓨터 프린터로 출력된 유서에는 ‘김 대위를 사랑한다. 이건 개인적인 문제다. 이번 사건으로 부대의 어느 누구도 피해를 입지 않길 바란다. 죽음으로써 벌을 받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유서는 두 사람의 다툼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정 대위가 미리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고 총기와 실탄을 몰래 빼돌리는 등 치밀하게 준비한 것임을 보여준다.

○ 다시 드러난 총기·탄약 관리 부실

정 대위가 8일 오후 총기와 실탄을 반출해 자기 차를 타고 경기 연천군의 부대 주둔지에서 약 350km나 떨어진 사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부대 측은 전혀 이상을 감지하지 못했다.

장교의 부대 출입이 병사보다 자유롭다고 해도 전방 부대에서 10시간이 넘도록 총기와 실탄이 사라진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육군은 정 대위가 8일 오전 부대 사격장에서 실시된 영점사격 훈련에 참가한 뒤 총기를 반납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실탄 30여 발은 부대 지휘통제실(상황실) 간이탄약고에 보관 중이었는데 정 대위가 지휘통제실 근무요원인 만큼 별다른 승인 절차 없이 외부로 반출할 수 있었다고 육군은 전했다.

하지만 평소 총기 관물대와 간이 탄약고는 반드시 이중 잠금장치를 해야 하고, 매일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또 장교라고 해도 반출 땐 관리요원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결국 부대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총기·탄약 관리가 화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부대 당직사관(중사)이 8일 오후 총기 관물대에서 정 대위의 K-2 소총이 사라진 사실을 발견한 뒤 상황병을 통해 정 대위에게 총기 반납을 요구했지만 정 대위는 “걱정 마라. 곧 반납하겠다”고 답한 뒤 오후 6시 20분경 퇴근한다면서 부대를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정 대위는 자기 차에 미리 빼돌린 소총과 실탄을 싣고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은 채 부대 정문을 나갔지만 이후 부대의 어느 누구도 정 대위의 총기 반납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육군 관계자는 “당직사관이 정 대위가 총기를 반납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도 이를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육군은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관련자들을 엄중 문책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윤상호 군사전문 기자 ysh1005@donga.com  
장성=이형주기자 peneye09@donga.com  
#무장탈영#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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