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보는 앞에서 의사 폭행하는 의사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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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을지병원 근무 A교수 전공의들 무차별 상습폭행
입원환자가 병원에 투서… 해당교수 “말 안들어서 때렸다”

“A 교수가 병실에서 젊은 의사의 뺨과 머리를 수차례 때리는 걸 봤습니다. 군부정권 시대도 아니고 아파 누워 있는 환자 앞에서 폭력, 욕설, 고함소리에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혔습니다.”

서울 노원구 을지병원에 입원했던 환자 A 씨는 지난달 24일 고객소리함에 이런 내용의 편지를 넣었다. 그는 “교수가 회진을 돌며 환자 앞에서 전공의를 수차례 때렸다. 병 치료와 안정을 위해 입원했는데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행동을 봐서 불쾌했다”고 했다.

기자가 전화를 걸어 내용을 확인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실이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병원의 여러 관계자는 “수년째 후배의사인 전공의들을 폭행한다. 병원 내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가 전공의를 때리는 모습은 동료 교수와 전임의, 전공의에게 낯설지 않다. 간호사와 식당 조리사 같은 병원 직원, 환자까지 목격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아서다.

병원 관계자는 “A 교수가 병실과 복도, 계단은 물론이고 수술실과 진료실에서 구타를 한다. 어느 전공의는 수술방에서 시작해 병원 곳곳을 끌려다니며 수십 차례 뺨을 맞았다. 얼굴이 붓고 귀 한쪽이 먹먹해졌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때리는 이유는 매번 비슷하다. 교수에게 보고해야 하는 환자 상태를 일부 빠뜨렸다고, 검사나 처치를 잘못했다고. 자신이 원하는 정도로 일을 완벽하게 해놓지 않으면 여지없이 손을 날린다.

그는 진료과목 특성상 100% 남자인 전공의들을 가르치는 중이다. 주로 연차가 높은 전공의를 맡는다. 병원 관계자는 “A 교수가 맡았던 전공의 중에서 안 맞았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폭력의 정도는 더 심해지고 있다. 슬리퍼로 뺨을 때리고, 수술실에서 바닥에 머리를 박게 한 뒤 물을 끼얹었다. 전공의를 때리던 알루미늄 목발이 휘어진 적도 있다.

A 교수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물을 뿌린 사실은 부인했지만 폭행 부분은 인정했다. 그는 “환자들은 제대로 치료받을 권리가 있는데 아무리 말로 주의를 줘도 전공의들이 말을 잘 안 들었다. 성격이 급한데 순간적으로 화가 나서 그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폭력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다.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고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폭행이나 폭언을 일삼는 의사는 A 교수만이 아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해 5∼7월 전공의 6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284명(45%)이 폭언이나 폭행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상급 전공의(49.3%)나 교수(35.2%)를 가해자로 꼽은 비율이 높았다. 그러나 10명 중 8, 9명(86.4%)은 별 대응 없이 넘어갔다.

전공의협의회 관계자는 “폭행을 당해도 교수에게 이의를 제기하는 건 엄두도 못 낸다”고 얘기했다. 도제식 수련 시스템에서는 교수가 진료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으면 배울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 이 관계자는 “세상의 변화에 따라 의료계 내부에서 폭력의 고리가 진작 끊어졌어야 했다. 잘못된 관행을 쉬쉬하는 바람에 병원 내 폭력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의사 폭행#사건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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