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찰선 닿게” “쇄골까지”… 머리길이 놓고 머리 맞댄 師-弟-父

  • 동아일보

■ 교사 학생 학부모 토론회로 학칙 함께 만든 인천 서곶中

인천 서곶중의 학생 학부모 교사 대표들이 학칙개정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하는 모습. 토론이 11일 오후 10시 40분까지 이어지자 학생들이 안전하게 집에 가도록 경찰이 도와줬다. 학생들은 “우리가 정한 학칙인 만큼 잘 지키겠다”고 입을 모았다. 서곶중 제공
인천 서곶중의 학생 학부모 교사 대표들이 학칙개정안에 대해 찬반 투표를 하는 모습. 토론이 11일 오후 10시 40분까지 이어지자 학생들이 안전하게 집에 가도록 경찰이 도와줬다. 학생들은 “우리가 정한 학칙인 만큼 잘 지키겠다”고 입을 모았다. 서곶중 제공
‘학부모 학생 교사의 의견을 수렴해 학교규칙을 개정했습니다. 모두 함께 만든 학칙을 잘 지켜 즐거운 학교를 만들 수 있게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인천 서곶중은 이런 내용의 가정통신문을 곧 학부모들에게 보낼 예정이다. 바뀐 학칙을 다음 달 1일까지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모든 학생과 학부모에게 알리고, 학칙을 준수하겠다는 동의서를 받기 위해서다. 학칙은 다음 달 17일 공포할 계획. 서곶중 교무실은 방학 중인 25일에도 분주했다.

서곶중은 11일 학생 학부모 교사가 참가한 가운데 ‘학칙 제정·개정을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1996년 개교 이래 처음이었다. 이날 확정된 학칙 개정 최종안은 19일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를 통과했다.

지금까지 학생 학부모 교사의 토론을 통해 학칙을 만든 곳은 거의 없었다. 학교가 일방적으로 만들면 그만이었다. 앞으로는 달라진다. 교육과학기술부가 2월 발표한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에 따라 전국의 모든 학교는 2학기 시작 전까지 서곶중과 같은 학칙 제정·개정위원회를 만들어 학칙을 제정·개정해야 한다. 서곶중은 새 학칙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 의견 달라 3시간 40분간 토론

학생 대표=여학생 머리 길이는 명찰선까지 하고, 묶는 것도 허용해야 합니다.

학부모 대표=묶지 않을 때는 귀밑 10cm, 묶을 때는 15cm로 합니다. 검정 끈을 사용하고, 일명 똥머리(상투처럼 말아 올린 머리)는 안 됩니다.

교사 대표=쇄골까지 허용합니다. 머리 묶을 수 있고, 똥머리 안 됩니다.

토론은 11일 오후 7시에 시작됐다. 시청각실 자리가 모자라 200여 명의 참석자 중 일부는 복도까지 줄을 섰다. 이들은 발표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학생 학부모 교사 대표 5명씩이 입을 열 때마다 격렬한 토론이 이어졌다.

교사=명찰 위치는 학생에 따라 다른데 머리길이를 자율로 하겠다는 겁니까.

학생=쇄골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그럼 차라리 cm로 정해야 합니다.

교사=정확한 길이를 정하면 일일이 자를 갖고 잴 수 없어 어렵습니다.

사회자=표결에 부치겠습니다. 1번, 명찰선까지 한다. 찬성하는 대표들 손 들어주세요.

“와아아아아!” 학생 대표들뿐 아니라 방청하던 학생들이 일제히 손을 들었다.

“방금 손드신 분들 나가 주세요.” 사회자(김선화 교사)가 말했다. “방청객은 투표권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학칙 개정은 어느 누구의 승리와 패배가 아닙니다.”

학부모 대표가 “명찰선 말고 교복 상의 주머니 윗선까지로 하자”는 의견을 냈다. 다른 대표들의 동의를 얻어 사회자가 다시 표결에 부쳤다. “1번, 주머니 윗선까지. 2번, 쇄골선까지. 손들어 주세요.”

결과는 7 대 8. 방청석에 앉은 학생들이 아쉬운 듯 탄성을 내뱉었다. 머리 묶기는 허용, 똥머리는 불허, 묶을 때는 검정 끈만 사용한다는 조항이 통과됐다. 염색과 파마를 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조항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 “함께 만든 만큼 잘 지킬래요”

토론회는 팽팽하게 진행됐지만 이 자리를 만들기도 쉽지 않았다. 의견을 모으고 일정을 잡는 데만 3개월이 걸렸다. 학생들은 학급별로 의견을 모은 뒤 학생총회에서 시안을 만들었다. 이후 학급별 회의와 게시물을 통해 의견을 다시 모았다. 학부모와 교사들도 여러 번 협의를 거쳐 시안을 만들었다.

최근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학칙에는 △두발·복장 △소지품 검사 △휴대전화 사용 △포상·징계 방법에 대한 내용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학생들은 “교복 상의 안에 색깔 있는 티셔츠 착용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했다. 교사들은 “교복을 풀어 헤치고 다녀서 사복처럼 된다”며 반대했다. 결국 흰색 티셔츠를 허용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종전 학칙 중 ‘여학생 치마는 무릎을 덮는 길이여야 한다’는 조항에 대해서는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아무도 무릎을 덮는 길이의 치마를 입지 않는 만큼 규정을 바꿔 무릎 중간으로 하자”고 제안해 찬성 12표로 통과됐다.

소지품 검사 규정을 새로 만들 때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학부모들은 “여학생의 소지품 검사는 여교사만 한다”는 내용을 넣으려 했다. 교사들은 “남자 교사가 담배나 흉기를 소지한 여학생을 발견해도 검사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남교사도 신체접촉을 하지 않는 선에서 여학생의 소지품을 검사할 수 있다”는 조항을 추가하기로 합의했다. 소지품 검사에 불응하면 벌점제를 적용하자고 교사들이 제의하자 모두가 동의했다.

토론회는 오후 10시 40분에 끝났다. 오동화 교감은 “처음 해보는 방식이라 힘들었다. 하지만 학생들 반응이 좋았다. 함께 만들었으니 잘 지킬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회장 박소현 양(15)은 “두발규정이 바라는 대로 통과되지 못해 일부 여학생의 불만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의 논의 끝에 만들어졌음을 알기에 잘 지킬 것이다”고 말했다.

서울 경기 광주 등 좌파 교육감 지역 학교는 대부분 학칙 제정·개정을 시작조차 못했다. 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를 지키라고 하기 때문이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학칙#인천 서곶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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