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탕탕… 총탄 빗발치는 대전전투, 칙칙폭폭… 美사단장을 구하라”

  • 동아일보

현충원 ‘호국철도전시장’에서 6·25때 운행 기관차 등 일반인에게 공개

1950년 7월 20일 오후 5시 10분 대전역 구내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어디서 총탄이 느닷없이 날아올지 모르는 상황. 대전 전투에서 연락이 두절된 미 24사단장 윌리엄 딘 소장(사진)을 구하기 위해 증기기관차를 타고 영동(충북)에서 달려온 김재현 기관사는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보다 마침내 ‘철수’를 결심했다. 대전역에 도착해 30분 이상 주변을 헤맸지만 북한군의 수중에 떨어진 대전에서 딘 소장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전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매복해 있던 북한군의 총격으로 동행한 미군 특공대원 33명 가운데 상당수를 잃은 상태였다.

북한군은 되돌아가는 길목도 지키고 있었다. 대전 판암동(동구) 부근에 이르자 소나기 총격을 퍼부었다. 응사에 나섰던 특공대원들이 다시 거꾸러지기 시작했다. 김 기관사도 총탄에 맞아 쓰러졌다. 현재영 기관조사가 대신 운전대를 잡았지만 역시 팔에 총알을 맞았다. 황남호 기관조사가 가까스로 기관차를 끌고 사선을 돌파해 미 24사단이 머무는 영동에 도착했다. 벌집처럼 변해버린 기관차에서 살아 내릴 수 있었던 사람은 특공대원 1명을 포함해 3명뿐이었다. 딘 소장 구출 작전은 다음 날에도 이어졌다. 역시 실패로 돌아간 이 2차 작전에서 기관차를 몰았던 장시경 신호원도 중상을 입었다.

전례를 찾기 힘든 기관차 구출작전은 세계 전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딘 소장은 20일 금강 방어선이 무너져 더는 대전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의 마지막 명령이 된 후퇴 지시를 내린 뒤 대전을 빠져나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어 홀로 북한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됐었다. 그는 35일 동안 대전과 그 주변의 산속을 헤매다 북한군에게 잡혀 포로가 됐고 휴전협정 후 포로교환으로 풀려났다. 6·25전쟁 당시 유일한 미군의 장군 포로였던 셈이다.

두 번이나 딘 소장 구출작전에 동원된 그 기관차는 ‘미카 3형 129호(MK3-129)’였다. 코레일에 따르면 MK3는 1940년대 일본에서 제작돼 조선총독부 철도국 경성 공장에서 조립된 소위 ‘칙칙폭폭’ 증기기관차다. 일제강점기 수탈에 이용되기도 했지만 6·25전쟁 당시 수많은 피란민을 실어 나르기도 했다. 문화재청은 이에 앞서 2008년 이 기관차를 등록문화재 제415호로 지정했다.

국립대전현충원은 2일 코레일과 공동으로 현충원에서 MK3-129와 연료차, 6·25전쟁 당시 운행했던 3등 객차 2량 등 총 4량과 선로, 신호기 등을 일반인에게 상설 개방하는 ‘호국철도전시장’의 문을 열었다. 이를 위해 코레일은 1970년 전후까지 운행되다 디젤기관차의 등장으로 퇴역한 MK3 기관차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자체적으로 보관해온 129호 기관차를 올해 6월 현충원으로 옮겼다.

당시 딘 소장 구출작전에 자원했던 철도원 가운데 사망한 김재현 기관사는 서울현충원에, 중상을 입은 현재영, 장시경 씨는 대전현충원에, 경상을 입은 황남호 씨는 임실호국원에 안장됐다. 정부는 1978년 김 기관사에게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고 미군은 올해 6월 특별공로훈장을 수여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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