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총수 지분없는 계열사 73%” 재계 “15년 前 잣대 그대로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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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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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 집단 내부지분 22년만에 최고 싸고 논란

10대 대기업집단(그룹)의 내부지분이 22년 만에 최고치로 높아졌다는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결과는 4·11총선부터 계속돼온 정치권의 ‘경제 민주화’ 논쟁에 새로운 불씨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내부지분 상승을 바라보는 재계와 정치권의 시각은 정반대다. 여야 정치권은 ‘재벌 빵집’ 논란 등에서 나타나듯 대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이 내부지분 상승을 불렀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재계는 이런 현상이 기업규모 확대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 정치권 지배구조 압박 거세질 듯

대기업집단의 내부지분 공개는 공정위가 1987년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 도입 때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에 공정위는 63개 상호출자제한기업의 소유지분도(圖)를 모두 공개하면서 수위를 높였다.

공정위의 이런 행보는 지난해부터 대기업의 계열사 확장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악화된 것을 의식한 것이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대기업 관련 정보의 공개를 통해 시장의 감시기능을 높이겠다”며 올해 업무계획에 지분도 공개 등의 방침을 밝혔다.

특히 공정위는 올해 4·11총선 등을 통해 출총제 부활, 순환출자 금지 등의 주장이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등 야권을 중심으로 제기되자 “출총제 등 사전적 규제는 실효성을 거둘 수 없고 공연한 논란만 야기한다”며 사후적 규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야당뿐 아니라 여당인 새누리당도 대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를 공격하고 나섰다. 새누리당 대통령선거 경선 후보인 이재오 의원은 10일 ‘공동체시장경제 정책’을 발표하면서 “환상형 순환출자를 금지시켜 재벌의 ‘가공(架空)자본’ 증식을 억제하겠다”고 밝혀 순환출자 금지를 전면에 내세웠다. 친박(친박근혜)계의 핵심인 이혜훈 새누리당 최고위원도 5일 경제민주화 토론회에 참석해 “경제력 집중이나 불공정행위 등 민주적 질서를 저해하는 재벌의 문제점을 고치고자 한다”며 순환출자규제 강화를 대기업 경제력 집중에 대한 해결책으로 꼽았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7월에 상호출자제한기업의 채무보증현황, 8월 내부거래현황, 9월 지배구조현황 등 민감한 기업정보를 계속 공개할 방침이다. 대기업들을 압박해 기업들이 스스로 사회적 비판을 받는 지배구조 개편에 나서길 기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 총수 있는 기업이 내부지분 높아

공정위에 따르면 총수가 있는 43개 그룹의 내부지분은 56.11%로 총수가 없는 집단에 비해 내부지분이 높았다. 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의 내부지분은 총수일가(총수와 친족)가 보유한 지분이 4.17%로 지난해(4.47%)보다 줄어든 반면 계열회사가 보유한 지분은 49.55%로 지난해보다 2.19%포인트 늘어났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 규모가 커지면서 총수와 친족들의 지분이 줄자 그룹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열사들이 보유 지분을 늘린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43개 그룹 가운데 29개 그룹은 총수 일가의 지분이 줄어든 반면 계열회사 지분은 늘었다. 또 총수 일가의 지분이 전혀 없는 계열회사도 72.8%인 1139곳이나 됐다.

위평량 경제개혁연대 연구위원은 “대기업집단의 총수들이 적은 지분을 갖고도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핵심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 지분을 갖는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의 힘”이라고 주장한다. 공정위에 따르면 현재 순환출자 구조가 있는 대기업집단은 모두 15개다. 특히 롯데는 그룹 내에 19개의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이어 삼성이 15개, 동양이 12개로 뒤를 이었다.

○ 대기업들 “일방적인 잣대는 곤란”

대기업들은 공정위가 대기업집단의 복잡한 출자구조를 공개하고 비난한 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출자구조가 복잡해진 데는 외부 경영환경의 영향도 큰데 이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대기업들 사이에서는 공정위의 행보로 반(反)기업 정서가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외환위기 때와 달리 대기업집단의 부채비율 등 경영건전성이 크게 개선된 만큼 당시 잣대를 그대로 적용해 정부가 일방적으로 생각하는 ‘모범적인’ 지배구조를 강요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순환출자구조를 갖고 있는 상위 10대 대기업집단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32조9200억 원으로 상장사 전체 당기순이익(47조6657억 원)의 69.7%에 이를 만큼 높은 경영성과를 거두고 있는 상황에서 순환출자 구조를 무조건 개혁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경제본부장은 “지배구조는 기업이나 기업주가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형태로 선택하는 것”이라며 “정부와 정치권이 대기업 정책에 국민경제 전체에 대한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공정위#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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