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메트로 달인]“잔디와 함께 20년” 김종문 잠실야구장 스포츠잔디관리 부장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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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잔디는 풀이 아닙니다 ‘밀리미터 과학’입니다

잠실야구장 관리본부 스포츠잔디관리팀의 김종문 부장은 잔디와 함께한 세월만 20년인 ‘잔디 달인’이다. 김 부장이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의 푸른 잔디 앞에서 관리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잠실야구장 관리본부 스포츠잔디관리팀의 김종문 부장은 잔디와 함께한 세월만 20년인 ‘잔디 달인’이다. 김 부장이 25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의 푸른 잔디 앞에서 관리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의 잔디는 항상 푸르다. 직선으로 쭉 뻗은 무늬를 볼 때면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항상 푸른 잔디구장이지만 ‘알아서 잘 크는’ 것은 아니다. 잔디와 흙을 항상 최고로 유지하는 데에는 어느 분야보다 치밀한 ‘밀리미터(mm)의 과학’이 필요하다.

25일 오후 4시 반 잠실야구장 관리본부의 스포츠잔디관리팀 사무실이 분주해졌다. 1루 더그아웃 앞의 잔디가 높은 온도에 바싹 말라 물을 줘야 했기 때문이다. 김종문 부장(50)이 밸브를 열며 “오전에는 22개의 스프링클러로 물을 주지만 오후에는 선수들이 쉴 때 빨리 마치기 위해 사람 손으로 물을 뿌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경기 용인의 레이크사이드 골프장 잔디 관리 경력을 비롯해 20년을 잔디와 함께 지낸 김 부장은 잠실야구장에서만 12년째 잔디와 흙을 관리하고 있다.

○ 잔디 위 나무젓가락 어디에 쓸까?

“2000년에 처음 위탁을 받았을 때 잔디의 3분의 2가 죽어 있는 상태였어요. 그걸 모두 교체할 때는 힘들었지만 작업하고 나서 ‘내일 구장이 또 얼마나 달라질까’ 생각하면 정말 좋았죠.”

잠실야구장 잔디는 외국종인 ‘켄터키 블루그래스’에 속하는 품종 중 3가지가 3분의 1씩 섞여 있다. 길이를 25∼30mm로 유지하기 위해 2, 3일에 한 번 잔디를 깎는다.

잠실야구장에 맞춘 특별한 관리는 그의 자랑이다. 잔디를 새로 깔면 15일은 그대로 두고 관리해야 잘 고정된다. 하지만 시즌 중에는 바로 다음 날 경기를 하는 경우도 많아 대책이 필요했다. 고정되지 않은 잔디가 밀리면 선수가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고민 끝에 ‘나무젓가락’을 이용하기로 했다. 새로 깐 잔디에 일정한 간격으로 10cm 정도 길이의 나무젓가락을 박아 고정한 것. 김 부장은 “2004년에는 파종한 잔디의 5분의 1을 까치가 파헤쳐 비상이 걸렸다. 폭우를 뚫고 충북 청주까지 트럭을 몰고 가 잔디를 구해 다음 날 경기를 치렀다”고 말했다.

“잠실야구장은 다른 구장과는 뭔가 달라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습니다. 너무 어지럽지 않으면서도 차별성을 지닌 잠실야구장의 잔디 무늬를 만들고 싶었죠.”

잠실야구장 내야와 외야 가운데의 엑스(X)자 무늬와 외야 좌우 측면의 1자 무늬도 모두 김 부장의 작품. 특히 외야의 직선무늬는 얇은 무늬 한 번, 두꺼운 무늬 한 번을 반복해 단순함을 피했다. 무늬만 만들었다고 관리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1만3200m²(약 4000평)의 구장을 1.8m 정도의 롤러로 자로 잰 듯 매일 눌러줘야 무늬가 선명하게 유지된다. 기계로 할 수 없는 곳은 수작업으로 정리한다.

○ 얄미운(?) 멋진 플레이

이날 경기의 홈 팀인 두산 베어스의 연습시간, 3루수가 민첩한 동작으로 공을 잡아 1루로 던졌다. 김 부장은 “수비 잘하고 많이 움직이는 선수가 가끔은 얄미워 보인다”며 웃었다. 스파이크에 흙이 파헤쳐져 잠시 뒤에 또 흙을 정리해 줘야 하고 잔디를 파낼 만큼 강하게 슬라이딩 하며 몸을 사리지 않는 선수가 적지 않다는 설명이었다.

김 부장은 “경기장의 흙도 섬세하게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잠실야구장은 흑운모만 쓰던 예전과 달리 마사토를 60% 정도 섞어 단단함을 조절했다. 비가 와도 경기하는 데 지장이 없고 선수들의 스파이크에 쉽게 파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는 “그래야 ‘흙(불규칙 바운드) 때문에 졌다’는 구단의 항의를 받지 않는다”며 웃었다.

“전날 경기에서 상한 잔디와 흙이 다음 날 새로 정돈돼 있으면 관중과 선수들이 얼마나 기분 좋겠어요. 한국시리즈 때 최고 선수들의 경기를 보시면서 잔디랑 흙도 수준급인지 한번 봐주시죠. 허허허.”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김종문#잠실야구장#잔디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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