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 교수 “중증외상센터는 돈 아닌 의지의 문제… 이제 겨우 첫발 뗀것”

  • 동아일보

■ ‘이국종 법’ 국회 통과 지켜본 이국종 교수

1시간에 가까운 통화가 끝날 무렵 아주대병원 외상외과 이국종 교수(사진)의 목소리가 커졌다. “의사들도 이번에는 죽을 각오로 따내야 합니다. 정말 이번에는….”

우여곡절 끝에 2일 국회에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과속차량 과태료 수입의 20%인 1600억 원을 응급의료선진화 기금으로 활용하기로 한 것을 2017년까지 5년 연장하는 게 주요내용이다. 이로써 올해 400억∼500억 원을 투입해 전국 5곳에 중증외상센터를 건립하기로 한 정부의 계획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을 때 법안 통과를 강력히 주장했던 이 교수였기에 소감이 궁금했다. 그는 법안을 만들기 이전에도 열악한 한국의 중증외상치료 현실을 꾸준히 지적해 왔다. 그러나 이 교수의 첫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이 교수는 이제야 정책을 뒷받침할 초보적 여건이 만들어졌다고 했다. 오히려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의지’입니다. 2009년 응급의료선진화 기금이 추가로 조성될 때만 해도 곧 중증외상센터가 생길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10년 전에는 돈이 없어 중증외상센터를 못 지어준다고 했는데, 돈이 있어도 안 만들어 준 거죠. 이번에는 기대해도 될까요?”

정치권과 정부에 대한 이 교수의 질타는 타당한 측면이 있다. 지난해 1월 삼호주얼리호 피랍사건을 계기로 열악한 의료 환경이 지적되자 보건복지부는 대형 중증외상센터 6곳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부처 간 협의에서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산됐다. 이어 100억 원짜리 20곳을 짓겠다고 했다가 80억 원짜리 20곳을 짓겠다고 하는 등 계획은 오락가락했다. 한참을 표류한 끝에 지난해 10월에야 전국에 센터 16곳을 짓는 방안을 최종 확정했다.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이 힘도 없고 돈도 없어 목소리를 크게 내지 못하니까 계획이 겉돌고 있는 건 아닐까요? 한국 병원은 낮과 밤이 전혀 다른 모습이란 걸 한국인만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인력과 장비가 없는 대한민국의 야간 의료수준은 나이지리아만도 못하답니다.”

응급의료선진화 기금은 △119 구급차 정비 △도서벽지 응급환자를 수송하기 위한 헬기사업 △미숙아 응급의료 지원 사업으로도 활용된다. 이 교수는 이 필요성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본질을 놓치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응급 환자를 치료하고 수술할 병원입니다. 주변 인프라만 잘 닦아놓으면 뭐합니까.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서 다친 사람이 새벽 2시에 병원 돌다가 죽는 일을 본 적 있습니까. 저희는 매일 봅니다. 지금 전쟁이에요. 즉각 병원으로 이송해 즉각 처치를 할 수 있는 핵심 인프라는 전혀 진척되지 않았어요.”

그는 응급의학 의사들이 정부의 경제적 지원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더 중요한 것은 사명감이지만 환자를 치료하면 할수록 병원이 더 큰 적자를 보게 되는 구조는 반드시 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환자를 보는 것은 의사들의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의사들이 이번엔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이국종 법#중증외상센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