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브라질 사업 투자” 속여 노인 2496명에 194억 가로채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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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다단계 업체 대표 구속

김모 씨(65·여)는 초등학교 교사직에서 명예퇴직한 직후인 2007년 초 중학교 동창회에서 동창 A 씨를 만났다. A 씨는 반가운 척하며 “삼성전자보다 더 좋은 회사가 있는데 이 회사 주식에 100만 원을 투자하면 6개월 만에 1억 원을 만들 수 있어 노후가 편안해질 것”이라고 꼬드겼다.

김 씨는 퇴직금 2억여 원 중 사별한 남편의 빚을 갚는 데 쓰고 남은 7000만 원과 대출받은 2000만 원을 A 씨에게 투자금으로 보냈다. 1년만 버티면 수십억 원을 만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주식은 주식시장에서 거래조차 되지 않는 비상장 주식이었다. 액면가가 100원짜리 주식은 가격이 액면가 이하로 떨어졌다. 김 씨는 회사 게시판에 수차례 글을 남기며 항의했지만 업체 직원은 “조금만 기다리면 폭등할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알고 보니 업체는 퇴직한 노인들을 모아 놓고 수백조 원의 사업을 한다고 속여 투자금을 가로챈 금융다단계 업체였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노인 2496명에게 중국과 100조 원 규모의 컴퓨터 합작사업, 70조 원 규모의 브라질 대륙횡단 철도사업 등을 한다고 속여 194억 원 상당을 받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T커뮤니티 대표 이모 씨(55)를 구속했다고 23일 밝혔다. 업체 관계자 10명도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에 따르면 2006년 초 회사를 설립한 이 씨 등은 같은 해 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서울 강남, 부산, 울산의 사무실로 노인들을 불러 모아 매일 사업설명회를 열었다. 100조 원, 70조 원대 사업과 듀얼 모니터 판매사업 등 7개 사업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이 진행됐다. 이 씨 등은 “액면가 100원짜리 비상장 주식에 투자하면 6개월 내 수천 배로 오를 것이다. 주가가 어디까지 오를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들은 금융위원회에 신고하지 않은 비상장 주식 785만 주(129억 원 상당)를 발행해 노인들에게 주당 79∼1만5000원에 파는 등 각종 투자금으로 194억 원을 챙겼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 브라질 등을 방문해 양해각서(MOU) 체결을 명분으로 주정부 관계자 등과 만나기만 했을 뿐 실제로는 사업을 추진하지 않았다. 업체 은행 잔액은 2000여만 원에 불과해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여력도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은 노인들이 컴퓨터, 주식 등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점을 악용했다”며 “피해자 중에는 99세 노인도 있고 피해액이 10억 원이 넘는 노인도 있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사기#사건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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