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리원전 블랙아웃이 주는 ‘쓰리 아웃 교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22일 03시 00분


① 사고 감추기 out… 외부기관 24시간 원전 모니터링 필요
② 효율만 강조 out… 가동률 100% 내세우기 보다 안전제일
③ 매뉴얼 무시 out… 먼지 쌓인 매뉴얼, 다시 꺼내 읽어라

지난달 고리 원자력발전소 정전사고는 21일 원자력안전위원회(안전위) 조사결과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규제당국은 물론이고 원전을 운영하는 한국수력원자력 본사마저 속이는 등 내·외부 감시체계가 철저히 무너진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이를 계기로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주 등 안전보다 수출 진흥에 역점을 둔 우리나라의 원전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원전이 아무리 경제성이 높아도 일본 후쿠시마 사태 같은 대형사고가 터지면 엄청난 사회·경제적 비용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고리 원전 사태가 남긴 교훈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짚어 봤다.

○ 24시간 내부 감시체제 만들어야

허술한 내부감시 시스템은 시급히 개선해야 할 문제다. 내부감시 체제가 워낙 허술하다 보니 문병위 당시 발전소장을 비롯한 운영실장, 기술실장, 발전팀장 등 소수의 현장 간부들끼리만 입을 맞춰도 한 달 이상 은폐가 가능했다. 다른 원전에서도 이런 유형의 은폐가 비일비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서울대 서균렬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지금처럼 폐쇄적이고 안일한 문화에선 은폐를 근절하기 힘들다”며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안전위나 한수원 본사에서 실시간으로 원전 상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위도 이날 한수원 본사의 감시 시스템과는 별도로 발전소 현장 정보와 보고사항을 안전위가 24시간 자동으로 통보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방침임을 밝혔다.

원전의 규제·감독 인원이 절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고리·영광·월성·울진 원전본부에 파견된 현장 규제인력은 20명. 이들이 현재 가동 중인 21기와 가동 준비를 하고 있는 2기, 건설 중인 5기 등 총 28기 원전을 담당한다. 원전 1기당 0.7명 수준으로 미국(2.1명) 프랑스(3.3명) 일본(2명)에 비해 절반도 안 된다. 이를 감안해 안전위는 현재 20명(부지당 5명)인 원전 주재관을 부지당 25명씩 총 100명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 운영 효율과 처벌에만 급급해선 안 돼

정부와 한수원은 원전 수출을 추진하면서 가동률이 100%에 가깝다는 점과 고장 정지율이 연간 0.1건으로 미국(1.0건)이나 프랑스(3.1건) 등에 비해 앞선다는 사실을 누차 강조해 왔다. 바꿔 말하면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길 땐 원전을 세워야 한다는 ‘안전 제일주의’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얘기다.

KAIST 장순흥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지난해 대규모 정전사태로 지식경제부 장관이 옷을 벗으면서 고장정지를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강한 압박감이 현장 직원에게까지 영향을 준 것”이라며 “무정지 운전보다 안전을 더 중시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전위는 이날 브리핑에서 “사건 발생에 대한 책임보다 적절한 대처와 신속한 보고 여부를 직원 평가 항목에 반영하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 사문화(死文化)된 매뉴얼 살려야

지난달 고리원전 1호기 정전사고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발전소 예방정비 시 차단기를 하나씩만 작동해야 한다는 ‘시험절차서(TP)’를 작업자들이 무시한 데 따른 것이었다. 심지어 최근 보령 화력발전소 화재에서도 주무부처인 지경부조차 담당 과장이 자체 ‘상황근무 매뉴얼’을 무시하고 보고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매뉴얼을 실질화하고 근무자들이 이를 철저히 지키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이재웅 동아사이언스 기자 ilju2@donga.com  
#고리원전#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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